대표 한류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다툼이 치열한 가운데 경쟁사 카카오와 네이버가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카카오는 SM 창업자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를 배제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와 손을 잡았고, 네이버는 이수만과 연합전선을 구축한 하이브와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하이브와 카카오가 나란히 SM의 주요 주주에 이름을 올리면 양대 포털이 같은 지붕 아래에서 콘텐츠 사업을 전개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질 전망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8일 이수만이 서울동부지법에 SM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결과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카카오는 유상증자 신주와 전환사채 인수로 SM 지분 9.05%를 확보해 2대 주주에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총 투자 규모는 2172억원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해외에서 급히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 SM 대주주 이수만은 곧바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제3자에게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발행한 행위가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 등 회사 지배관계에 변동을 주는 위법행위라는 주장이다.
이어 하이브가 SM 지분 14.8%를 422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해 단숨에 1대 주주로 부상하며 SM 현 경영진과 카카오에 맞불을 놨다. 하이브 창업자 방시혁 의장은 "K팝을 하나의 산업으로 일궈낸 것에 대해 존경의 뜻을 표한다"며 이수만의 편에 섰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이브는 소액주주 지분 추가 확보에 나섰으며 이수만과 대립각을 세운 현 경영진을 대신할 새로운 이사진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도 이에 맞서 더 많은 SM 지분을 쓸어담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지난달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싱가포르 등 해외 국부펀드로부터 1조2000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바 있어 실탄은 넉넉하다는 평가다.
다만 카카오는 SM 경영권 싸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카카오 관계자는 "추가 지분 매수 계획은 정해진 게 없다"며 "SM에 대한 투자는 사업적인 협력과 시너지를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흥미롭게도 '반 이수만' 연대에 선 카카오와 달리, 네이버는 하이브·이수만 연합군과 오랜 연을 맺고 있다.
지난 2021년 네이버는 아티스트가 실시간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스트리밍 앱 'V라이브'를 하이브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4119억원을 투자해 팬 커뮤니티 '위버스'를 운영하는 하이브 자회사 비엔엑스의 지분 49%를 인수했다.
커뮤니티 전문 조직 네이버그룹&CIC(사내독립기업) 김주관 대표가 비엔엑스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아 V라이브와 위버스의 통합 작업을 이끌었다.
위버스는 아티스트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영상 콘텐츠는 물론 굿즈 등을 판매하며 글로벌 아티스트·팬 플랫폼으로 도약했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700만명에 달하며, 하이브의 BTS 외에도 YG엔터테인먼트의 빅뱅과 블랙핑크 등도 입점해있다.
SM도 자회사 디어유가 운영하는 '버블'을 보유하고 있는데, JYP 소속 아티스트들도 활동하고 있어 위버스와 합치면 거대한 팬 커뮤니티 플랫폼이 탄생하게 된다.
카카오와 네이버가 SM의 경영 환경 변화로 한류 콘텐츠 사업에서만큼은 라이벌을 벗어나 공생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카카오엔터에는 아이브와 아이유 등 인기 아티스트가 다수 포진돼 있지만 별도의 팬덤 플랫폼은 없다. 네이버는 엔터 사업을 직접 영위하지는 않지만 부가 수익 창출이 가능한 강력한 소통 채널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위버스에 콘텐츠가 늘어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나쁠 건 없다고 본다"며 "주인이 누가 되는지는 조금 신경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서비스 주체와 상관없이 잘 협업하는 게) SM 현 경영진의 의지"라며 "카카오도 이 전략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단 카카오는 네이버의 DNA가 녹아있는 위버스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배재현 카카오 공동체투자총괄 대표는 최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팬덤 플랫폼 사업과 관련해 "카카오 아티스트 및 탤런트 IP(지식재산권)의 디어유 입점으로 라인업을 확대하고, IT 기술력을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수만의 가처분 신청이 어떻게 결론이 나는지가 관건이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카카오가 글로벌로 사업 영토를 확장하는 '비욘드 코리아' 비전은 시작도 못 하고 제동이 걸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