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고우석(25)과 정우영(24)은 2019년부터 KBO리그 최고 '불펜 듀오'를 형성하고 있다. 고우석은 입단 3년 차였던 2019년 마무리 투수로 보직 전환했다. 이때 정우영은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이었다.
20대 초반 젊은 투수 두 명이 이렇게 몇 년 동안 셋업맨-마무리를 나눠 맡은 적이 KBO리그 역사상 거의 없다. 고우석은 2019년 이후 최근 4년간 리그 최다인 124세이브를 올렸다. 이 기록을 갖고 있던 오승환(삼성 라이온즈·93세이브)을 크게 앞질렀다.
정우영도 같은 기간 KT 위즈 주권과 함께 리그 최다 홀드 공동 1위(98개)에 올라 있다. 2019년 LG 소속으로는 이병규 이후 22년 만의 신인상을 받은 그는 매년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고우석과 정우영은 생애 첫 세이브(42개)왕 홀드왕(35개)에 차지했다. 나란히 최고 시속 155㎞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는 두 투수 덕분에 LG는 최근 2년 연속 불펜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다.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고우석과 정우영은 내구성도 뛰어나다. 고우석은 "어느 순간 우리보고 철강왕, 무쇠팔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건강함의 대명사'가 되어 있더라. 앞으로도 계속 아프지 않고 잘 던져서 고무팔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서로를 향한 믿음이 큰 거 같다. 정우영(정)="좋은 마무리가 있어서 8회까지만 막으면 된다. 주자를 남겨놓고 내려와도 (우석이 형이) 막아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 고우석(고)="좋은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다. 한 명이라도 불안하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우영이 덕분에 우리 팀 불펜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서로에게서 뺏어오고 싶은 점이 있나. 고="우영이의 신체 조건(1m93㎝, 고우석 1m78㎝)이 정말 부럽다. 내가 정통파 투수여도 키가 작아서 (사이드암) 우영이의 릴리스 포인트와 별로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둘 다 웃음). 우영이가 입단 초기에는 호리호리한 몸매였는데 이제는 탄탄해졌다. 노력을 통해 단기간에 체형을 바꿨다." 정="우석이 형의 힘 쓰는 법이 부럽다. 나는 온몸을 비틀어서 힘을 쓰는데, 우석이 형은 순간적으로 파워를 이용한다. 그 투구 동작을 배우고 싶다."
인터뷰 중 LG 선수단 얘기가 나오자 고우석은 "넌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냐?"고 물었다. 정우영이 "정보가 많은 편입니다"라고 답했다. 고우석은 "난 주변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궁금한 게 있으면 우영이한테 다 물어본다. 우영이는 얘기해 주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했다.
-두 선수 모두 해외 진출 목표가 있지 않나. 고=단순히 '(해외에 가도) 통하겠지?'라고 여길 뿐이다. (올 시즌 후 해외 진출은) 현실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다. 구단의 허락도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그럴만한 기량을 갖췄느냐에 달려 있다. 해외 진출은 모든 선수가 갖는 꿈이다. 마치 해외 진출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국내에서도 1이닝도 막지 못하면서 메이저리그(MLB)서 던지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지 않나." 정="주변에서 많이 추천한다. 어느 순간 '어? 내가 메이저리그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꿈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더 잘해서 더 큰 무대로 나가고 싶다." 고="주위에서 꿈을 심어주는 게 좋다.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웃음). 나 혼자 초등학교 때부터 막연히 (미국 진출) 꿈을 갖기 시작했다." 정="스카우트가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해외 팀과 계약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고="맞다. (해외 구단의 관심이) 전혀 없는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아직 적극적이진 않다." 정="확실한 건 MLB에 진출한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또 도전을 선언한 이정후(키움 히어로즈) 형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스카우트들이 KBO리그를) 보다가 다른 선수들도 관찰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도 관심을 두는 거라 생각한다."
지난달 초 LG의 신년 하례식, 팀을 대표해 인터뷰에 나선 정우영은 "(고)우석이 형이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 일본전에서 야마다 데스토에게 싹쓸이 결승 2루타를 맞는 것을 보고, 내가 던졌으면 유격수 땅볼로 잡았을 텐데"라고 말한 바 있다. 고우석은 이 경기에서 패전 투수가 됐다.
고="우영이의 인터뷰를 기사로 접했다. 예전에도 '내가 망쳤어'라고 말했다." 정="일본 타자 분석을 위해 얼마 전 그 장면을 유튜브로 다시 봤다. 우석이 형은 몸쪽으로 잘 던졌다. 타자(야마다)가 기가 막히게 몸을 빼서 잘 치더라. 타구가 조금만 빗맞아도 3루 땅볼이나 유격수 땅볼이 나올 것 같더라." 고="아니다. 구종 선택이 잘못됐다. 당시 '슬라이더를 한 번 던지면 어떨까'하고 망설였다. 직구를 던졌는데 실패였다." 정="그 전에 폭투도 나왔고 볼넷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투수는 여유가 없다. 타자는 당연히 직구를 노리고." 고="실력 부족이다. 내 선택에 확신이 부족했다. 그냥 들이댈 자신감만 있었다. 그때 경험으로 내게 무엇이 더 필요한지 생각하게 됐다."
2019 프리미어12, 도쿄 올림픽 등에 다녀온 고우석과 달리 정우영은 이번에 처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다. 고우석은 "나도, 우영이도 더 성장했다. 이번 WBC를 통해 더 성장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WBC가 해외 진출을 위한 쇼케이스가 될 거 같다. 정="나는 아직 (해외 진출까지) 멀었다. 그저 상대 타자들이 내 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하다." 고="큰 의미가 없다. 우리도, 상대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표본이 될 만큼 경기 수가 많지 않다. 내가 잘 던진다고 '해외 무대에 나가면 통하겠다'고 여겨서도 안 되고, 부진하다고 좌절할 것도 아니라고 본다. 정상 컨디션은 아니어도 뛰어난 클래스를 갖춘 선수들이니까 덤벼보고 싶다. 내 무기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다."
-2022년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 패배)에 대한 아쉬움이 클 것 같다. 고="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정="지난 시즌을 통해 우승이 정말 힘들다고 느꼈다. 솔직히 정규시즌 1위 아니면 답이 없는 것 같다. 오죽하면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처럼 1·2위가 같이 유리하도록 제도가 바뀌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니면 디비전시리즈부터 거쳐야 하는 MLB처럼 바뀌던가." 고="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제도가 바뀌는 첫해 우리가 1등 하면 괜히 안 좋을 수 있다. 지난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 형들(유강남, 채은성)이 많아서 우승 열망이 진짜 컸다. 우리가 지금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은 '우승으로 가기 위한 길'이라고 여긴다." 정="형은 항상 행복 회로를 돌린다." 고="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
정="저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지난해 87승을 기록하고도 (우승에) 실패했으니 '더 이상 뭘 어떻게 더 잘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고="LG 왕조를 세워 우승 반지를 끼고 싶다. 선수 실력은 계속 오르는데 우승을 놓치니까 욕심을 내려놓게 됐다. 우리가 계속 강해진다면 어느 순간 이루어지지 않을까. 포스트시즌 얘기를 하니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처럼 파노라마가 지나간다."
-올 시즌 목표는. 고="건강한 시즌을 보내고 싶다. 단순히 부상이 없는 시즌이 아닌 좋은 컨디션으로 보내고 싶다는 의미다. 또 우승을 목표로 던지겠다." 정="아프지 않은 게 최우선이다. 국제대회서 민폐 끼치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싶다." 고="어느 순간 우리보고 철강왕, 무쇠팔이라고 표현해주시더라. 앞으로도 건강하게 던져 고무팔로 불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