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제가 영상을 찍고 편집을 합니다. 채널 이름이 ‘황교익 Epi-Life’입니다. Epi는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루스(Epicurus)에서 따온 것입니다. 미식가를 뜻하는 영어 에피큐어(Epicure)가 Epicurus에서 비롯했습니다.
Epicurus의 철학을 쾌락주의라 번역하는데, 이 쾌락이라는 단어로 인해 그의 철학이 오해되기도 합니다. Epicurus가 이르고자 한 궁극의 경지인 아타락시아는 불교의 열반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Epicurus는 인간의 감각과 감정 그 너머의 무엇을 위해 금욕적 삶은 살았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쾌락과는 정반대에 있는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미식의 시대라고 합니다. 미식은 저의 오랜 화두이기도 합니다. 배움이 짧은 글쟁이가 미식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미식은 이것이다” 하고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저의 “미식적 삶”을 보여주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 그래서 ‘황교익 Epi-Life’라고 이름을 붙인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일간스포츠가 제게 연재 지면을 주었습니다. 편집진은 “한국 음식에 관한 것이면 어떤 글이든 다 좋다”고 하였는데, 그래도 집필 방향이 있어야 독자 여러분이 이 지면의 글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 유튜브 채널 이름 ‘황교익 Epi-Life’를 여기에도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일상에서 겪는 미식 경험을 솔직하고 재미나게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 갔습니다. 해미읍성 주차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호떡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마가린으로 튀기듯 굽는 호떡이었습니다. 해미읍성 정문 앞에는 2층짜리 건물의 호떡 카페가 있고, 해미읍성 안에는 (사)해미읍성역사보존회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호떡집이 있습니다. 호떡이 해미읍성 향토음식인가 싶었습니다.
호떡은 구한말에 화교와 함께 이 땅에 들어온 음식입니다. 1924년 경성부 재무국 조사에 의하면 서울에 설렁탕집보다 호떡집이 많았습니다. 이때의 호떡은 지금의 호떡과 다른 음식입니다. 노동자가 끼니로 먹는 커다란 ‘빵떡’이었고, 그래서 호떡집을 설렁탕집과 비교하였던 것입니다.
한반도 격동기에 화교들이 이 땅을 떠났습니다. 호떡이 한국화합니다. (자장면의 역사와 비슷하지요.) 화교의 호떡은 대체로 화덕에 구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전통의 번철’이 있습니다. 가마솥 뚜껑 뒤집어놓은 것이 번철입니다. 부침개 방식이 우리 호떡 조리법으로 안착합니다.
기름이 귀했던 시절엔 호떡이 번철에 구워졌습니다. 밀이 타면서 내는 구수함이 호떡에 묻어 있었습니다. 1966년 동방유량 개업 이래 식용유가 값싸게 주어지면서 호떡은 기름에 지져졌습니다. 1970년대 마가린의 등장과 맞물려 호떡의 시대가 활짝 열렸습니다. (호떡의 주요 고객인 청소년에게 용돈이 넉넉하게 주어지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마가린은 고체여서 번철에 바르기 쉬운 것은 물론, 인공 크림향과 소금이 호떡의 맛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1980년대에 마가린이 건강에 안 좋다는 말이 돌면서 식용유에 밀려납니다.
호떡은 기름의 종류와 조리 방식에 따른 맛 차이가 큽니다. 그날 해미읍성 일대를 돌며 마가린에 튀긴 호떡, 콩기름에 지진 호떡, 기름 없이 솥뚜껑에 구운 호떡을 연속해서 먹었습니다. 세 호떡 모두 맛있습니다. 맛에 차이가 난다는 말은 어느 호떡이 더 맛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호떡집 앞에서 뜨거운 호떡을 손에 들고 설탕물에 혀를 데여가며 먹는 호떡이 맛없었던 적이 있었는지요.
이 세상의 모든 호떡은 보편적으로 맛있습니다. 자신에게 특별나게 맛있는 호떡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대체로 추억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코흘리개 때에 처음 또는 자주 먹었던 호떡에 특별난 애착을 가집니다. 여러분의 추억 속 호떡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요. 구수한 곡물 향인가요, 고소한 콩기름 향인가요, 크리미한 마가린 향인가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황교익은 농민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안주하는 삶이 싫어서' 사직서를 냈다. 이후 프리랜스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2015년 tvN '수요미식회', 2017년 '알쓸신잡'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었다.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학문인 '음식 인문학'을 대중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맛 칼럼니스트로서 성과가 뚜렷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자주 받은 탓에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맛을 탐구하는 그가 지향하는 삶은 물 같은 삶이라고 한다. 아무 맛도 나지 않지만, 반드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