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UFC 여성 파이터 타티아나 수아레즈(33·미국)의 인생도 참으로 굴곡이 깊다.
종합격투기 전적 8전 전승을 기록 중인 수아레즈는 오는 2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UFC 파이트나이트에서 여성 플라이급(56.7kg 이하) 경기를 치른다. 상대는 통산 전적 20전 12승 7패 1무승부를 기록 중인 몬타나 데라로스(28·미국)다.
필자는 경기를 앞둔 수아레즈와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수아레즈의 사연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의 얘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모니터 화면에 등장한 수아레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설렘이 가득했다. 살짝 흥분한 기색도 엿보였다. 그럴 만도 하다. 이번이 4년 만에 갖는 복귀전이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3살 때부터 레슬링을 시작한 수아레즈는 촉망받는 여성 레슬링 유망주였다. 2011년 여자레슬링 자유형 55㎏급에서 전미 랭킹 1위였다. 2008년과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 차례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렇게 잘 나가던 수아레즈에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훈련 중 입은 목 부상 때문에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던 도중 갑상샘암이 발견된 것.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격리된 상태로 항암치료를 18개월이나 받아야 했다. 올림픽의 꿈은 허무하게 물거품이 됐다.
치료 과정은 길고 외로웠다. 무엇보다 인생 목표의 전부였던 올림픽 금메달 꿈이 사라진 데 대한 좌절감이 컸다. 더는 레슬링을 할 수 없었다. 대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바로 종합격투기 UFC였다.
수아레즈는 암 완치 판정을 받은 뒤 주짓수를 시작했다. 압도적인 레슬링 실력은 여전했다. 레슬링을 바탕으로 주짓수 무대도 평정했다. 2013년과 2015년 세계주짓수선수권대회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레슬링에 이어 주짓수까지 정복한 그에게 거칠 것이 없었다. 2015년 MMA에 데뷔한 뒤 2016년 UFC 리얼리티쇼인 ‘TUF(The Ultimate Fighter)’에 출전해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UFC 데뷔 후 5전 전승을 기록했다. 단숨에 챔피언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적어도 또 한 번에 시련이 찾아오기 전까진 그랬다.
운명의 신은 수아레즈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챔피언 도전을 눈앞에 두고 고질적인 목 부상이 재발했다. 목 부상은 레슬링 선수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던 인생의 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치명적인 무릎 부상까지 찾아왔다. 걷는 법, 뛰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다른 선수라면 선수 인생을 포기했을 터. 하지만 수아레즈는 물러서지 않았다. 4년간 지루한 치료와 재활을 견뎠다. 그리고 그토록 바랐던 옥타곤에 다시 돌아왔다.
수아레즈에게 4년 만에 복귀하는 소감을 묻자 환하게 웃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는 “이제 막 경기장에 나가 싸울 준비가 됐다. 마침내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다”면서 “정말 기분 좋고 흥분된다. 마침내 내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어떻게 힘든 시기를 이겼는지 궁금했다. 수아레즈는 살짝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릎 부상을 입고 이틀 동안 포기하고 싶었다.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었다. 격투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다. 매일 아침 훈련을 갈 생각에 기뻐하며 일어난다. 나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열정을 쏟아붓는 일이다.”
격투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매력이 뭔지 물었다. 수이레즈는 격투기 얘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스스로 더 나아지겠다는 생각만으로 매일 동기부여가 된다. 그게 내 성격이고, 격투가로서 나란 사람이다. 격투기의 매력은 언제나 더 발전할 요소가 있는 점이다. 모든 상대가 다 다르다. 일종의 놀이터 같다. 항상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있다.”
4년간 참고 기다린 만큼 의욕이 넘친다.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도 되살아났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수아레즈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최고의 파이터가 되고 싶고, 타이틀을 보유했던 모든 최고의 선수들과 싸우고 싶다. 여성 격투기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뤄낸 모든 선수와 대결하고 싶다. 스포츠에서 큰 업적을 세운 선수들과 케이지를 나눈다는 건 큰 영광이다. 나는 뛰어난 그래플링 실력을 가지고 있다. 최고 선수들을 상대로 내 기술을 시험해보고 싶다.”
“최고의 파이터이자 가능한 한 가장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 뒤 쑥스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인 수아레즈는 앞으로 플라이급과 스트로급에서 모두 활약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복귀전을 앞두고 감량을 걱정하지 않고 시합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건강한 상태로 캠프를 치러내고 싶어 플라이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이번 경기를 잘 치르면 정신적으로 감량에 대한 준비를 잘한 뒤 스트로급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다. 힘든 과정을 거친 만큼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시험할 준비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