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던 투수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타구에 맞은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오른쪽 팔을 부여잡고 쓰러진 투수는 한참을 뒹굴다 트레이너의 부축을 받고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병원 진단 결과 오른 팔꿈치 인대가 손상됐다는 소견을 받았다. 수술대에 올랐다. 내측 인대 재건과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회복 및 재활 치료, 복귀까지는 1년. 베테랑 투수 박시영(34·KT 위즈)에게 예기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2020년 12월 롯데 자이언츠에서 KT 위즈로 트레이드돼 온 박시영은 2021년 3승 3패 12홀드 평균자책점 2.40으로 맹활약하며 뒤늦게 꽃을 피웠다. 좋은 활약에 필승조를 꿰찬 박시영은 팀의 창단 첫 우승까지 이끌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청천벽력이었다. ‘이제 잘 풀리나’ 싶었던 그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이상 걸린다는 주변의 경험담이 박시영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재활 초기엔 공도 잡을 수 없고 지루한 재활 훈련만 반복하다 보니 답답하기만 했다. ‘잘 버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럴수록 박시영은 가족의 힘으로 버텼다. 평소 많이 보내지 못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아내의 응원과 내조 속에 지루했던 재활 터널을 잘 버텨냈다. 재활 치료 기간을 돌아본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눈 떠보니 어느새 공을 던지고 있더라”며 가족이 기나긴 재활 치료 시간을 버틴 원동력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부상 이후 약 9개월이 지난 현재, 박시영은 익산의 재활조 캠프에서 공을 던지며 순조롭게 재활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아직 온 힘을 담아 공을 던질 순 없지만, 평지에서 4,50% 수준의 힘으로 던질 수 있는 단계까지 올라섰다. 박시영은 “현재 40% 정도 몸 상태가 올라온 것 같다”라며 순조롭게 재활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월엔 해외 재활조 캠프까지 다녀와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조현우, 장준원 등 재활조 멤버들과 함께 따뜻한 필리핀에서 공을 던지면서 희망을 품었다. 박철영 재활군 코치와 정경섭 재활 트레이너의 관리 아래 한 차례의 중단도 없이 순조롭게 재활 훈련을 해나갔다. 너무 순조롭다 못해 오버페이스 기미가 보일 때면 정 트레이너가 페이스를 조절하며 부상을 방지하고 있다고 했다.
박시영의 예상 복귀 시점은 7월이다. 재활은 순조롭지만, 완벽한 복귀를 위해 페이스를 오히려 늦추고 있다. 그는 “작년에 불펜 동료들이 정말 잘하더라. 내 빈 자리가 하나도 안 느껴져서 좋으면서도 서운했다”라고 웃으면서 “든든한 동료들이 있으니, 나는 다소 늦더라도 완벽하게 몸을 만들고 복귀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한편, 그는 지난해 퓨처스 FA 자격이 있었음에도 이를 포기하고 KT에 남았다. 부상으로 시즌 절반 이상을 날린 죄책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KT라는 팀이 좋아서, KT 팬들의 함성을 다시 듣고 싶어 조금의 고민도 없이 잔류를 택했다고 이야기했다. 다시 마운드에 선다면 울컥할 것 같다는 그는 “제가 복귀했을 때도 이전처럼 큰 함성과 응원으로 맞아주셨으면 한다”라며 새 시즌 복귀를 고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