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사진=미디어캐슬/로커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재난으로 상실을 겪은 주인공 ‘스즈메’가 또다른 재해를 막기 위해 문을 닫아가는 이야기다.
‘빛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배경 작화가 사실적이고 섬세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작 ‘언어의 정원’에서는 비가 내리는 녹음을 아름답게 표현해 찬사를 받았고, 국내에서 흥행한 ‘너의 이름은.’도 실제 공간과 작품 속 배경이 거의 일치해 여행지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 스즈메는 가업으로 재앙을 불러오는 문을 닫는 청년 ‘소타’를 따라 일본 전역에 퍼져 있는 문을 닫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즈메의 이동 경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규슈 지방부터 시작된다. 이후 스즈메는 시코쿠에서 고베로, 또 도쿄로 북진하며 재앙의 문을 닫아간다. 그리고 모험의 끝은 스즈메가 어릴적 살던 고향이자 동일본 대지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으로 향한다.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사진=미디어캐슬/로커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재앙의 문이 발생하는 장소는 ‘하이쿄(폐허)’다. 일본은 1980년대 버블경제 이후 장기 침체를 겪으면서 각 지역에 버려진 폐허, 즉 ‘하이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 전역에서 도시나 건물이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이러한 폐허를 탐험하는 취미를 가진 ‘하이쿄이스트’가 신조어로 등장하기도 했다.
작중에서는 스즈메와 소타가 ‘하이쿄이스트’처럼 폐허를 찾아다니며, 그 속에서 발생한 재앙의 문을 과거 사람들의 추억을 상상하며 닫는다. 원래대로라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무게로 나오지 않을 ‘재앙’이지만, 사람들이 떠나고 도시가 버려지면서 재앙이 비져나올 문이 나왔다는 설정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재앙을 맞은 인간의 폐허가 된 마음과, 버려진 도시의 폐허를 동일시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고인을 보낼 때 지내는 장례식과 같은 위령 의식이 토지나 마을을 위해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버려지고 방치된 쓸쓸한 풍경이 강렬한 영감이 됐다. 사람이 떠날 때처럼 장소를 떠날 때에도 애도를 표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사진=분고모리 기관고 홈페이지 일본에서는 ‘스즈메의 문단속’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작품 속 폐허를 팬들이 찾아다니며 그 모티브를 확인하고 있다. 스즈메가 작품에서 처음으로 문을 닫은 폐허는 일본 규슈 오히타현에 위치한 분고모리 기관고로 알려져 있다. 1934년에 만들어진 이 기관고는 하루에만 5천여명이 이용하던 이 기차역은 철도 마을로 크게 번성했지만, 증기 기관차에서 디젤 기관차로 바뀌면서 쇠퇴했다. 폐허가 작품을 통해 다시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스즈메는 폐허가 된 도시의 추억을 기억하고, 위로하며 재앙의 문을 닫고, 그 과정에서 재앙으로 폐허가 된 자신의 마음도 치유해간다. 어떤 상처는 마주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