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5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사무총장은 1980~90년대 국내 프로축구 K리그를 대표했다. 그는 1987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해 12시즌 동안 255경기 35골·17도움을 기록했다. 신인선수상, 최우수선수상(MVP) 등을 받았다. K리그 최초 영구결번(16번) 선수다. 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IFFHS) 선정 3년 연속(1989~91) 아시아 올해의 선수인 ‘아시아 스타상’을 받았다.
김주성은 K리그 원조 멀티플레이어다. 공격수와 미드필더, 수비수 등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 걸쳐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될 만큼 다재다능한 기량을 뽐냈다. 전문가들은 “김주성의 플레이는 화려했을 뿐 아니라 폭발적이었다. K리그의 아이콘인 이유”라고 말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도 세 차례(1986 멕시코·1990 이탈리아·1994 미국) 출전했다.
김주성은 개성이 강했는데, 특히 장발을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그라운드의 야생마’ ‘아시아의 삼손’이다. 최근 본지와 만난 김주성은 “프로 선수로서 자신만의 개성으로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봤다. 특히 젊은 층에서 호응이 좋았다”며 “기량이 좋지 않은데 자신의 개성을 (과도하게) 어필하면 역효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웃었다.
김주성은 대기만성형 선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특급 선수로 평가받지 못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광주 소재 조선대로 진학했다. 대학 진학 후 김주성은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개인 훈련과 팀 훈련에 매진했다. 김주성은 “대학교 입학 전까지는 유명하지 않은 선수였다. 그때 ‘운동에 미쳐야 한다’고 결심했다. 운동과 훈련에 모든 걸 걸었다”고 돌아봤다.
왼쪽 측면에서 활약한 김주성의 최고 강점은 빠른 스피드였다. 그가 조선대 재학 중 공을 리프팅 하면서 계단을 올라가 하체 근육을 단련한 효과가 나타났다. 프로에서 성공한 뒤에도 크로스컨트리, 줄넘기 등 하체 훈련을 빼놓지 않았다. 김주성은 “기본기를 닦으려는 노력을 오랜 기간 꾸준히 충실하게 했던 게 돌파력, 볼 키핑, 드리블 능력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주성은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공간 돌파를 팬들께서 많이 좋아하셨다. ‘김주성은 역동적이고,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한 일대일 돌파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린다’라는 이미지가 생겼다”며 “앞으로 50년, 100년이 지나도 (나를) 다른 선수와 비교했을 때 내가 긴 머리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현란한 드리블을 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김주성은 K리그 역대 최고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에서 각기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됐지만, 그의 주포지션은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김주성 또한 “공격을 하는 선수로서의 화려함과 성취욕이 다른 포지션보다 두세 배 높았다. 미드필더로 뛰었을 때 김주성의 축구가 가장 화려했다. 축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짚었다.
‘테리우스’ 안정환(47)은 자신의 우상이 김주성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둘은 긴 머리에 화려한 공격 축구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주성은 “안정환이 나를 롤모델로 생각하고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는 건 (나한테) 참 감사한 일이다. 대우 시절 신인 선수인 안정환과 룸메이트였다. 후배가 잘되니 내가 골 넣었을 때보다 더 큰 기쁨이 된다”며 웃었다.
김주성이 주축 선수로 뛴 대우는 거칠 것이 없었다. 김주성이 뛰는 동안 대우는 부산 아이파크 시절을 포함해 리그에서 세 번 우승했다. 1991년에는 7라운드부터 27라운드까지 21경기 연속 무패(13승 8패)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조기에 확정했다. 1997년엔 정규 리그,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대 K리그에서 대우를 견줄만한 팀은 없었다.
스타 선수로 호화 군단을 이룬 대우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김주성은 ‘K리그 얼굴’이 됐다. 고등학생 때까지 무명에 불과했던 김주성의 대반전이었다. 김주성은 “축구는 혼자 뛰는 종목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대우에서 유달리) 부각이 된 건 프로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뛰며 만들어낸 결과 덕분이다. (당시 대우는) 조직력과 협동심이 워낙 좋았다”고 몸을 낮췄다.
축구 행정가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김주성은 시간을 짬 내 대우 시절 동료들과 왕왕 만난다. 오랜 우정을 간직하자는 의미로 선수 시절과 판박이인 기념 유니폼도 주문 제작했다고 한다. 김주성은 “아직도 부산 시민들께서 대우 로얄즈를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셨던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무척이나 설렌다.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주성은 “K리그에서 ‘원클럽맨’으로 뛰면서 프로 첫 경기, 은퇴 경기, 리그 우승을 확정했던 경기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좋은 선수들로 구성된 대우에서 뛰었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던 모기업이 있었던 게 내가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홈 경기가 있을 때마다 부산 구덕운동장에 모였던 부산 시민들도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