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캠프 도중 이야기를 나누는 코치와 외국인 투수의 모습. 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선수는 코치를 바라보지만, 코치는 선수가 아닌 통역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피지컬 100’에서 1.5t짜리 배를 끄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세 팀이 겨뤘는데 가장 강할 것으로 예상된 ‘윤성빈-마선호 연합팀’의 통과 시간이 가장 늦었습니다. 이런 차이를 ‘힘의 합력’으로 풀이한 유튜버가 있네요. 각자의 힘이 좋아도 방향을 맞추지 못해 힘을 제대로 모으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반대로 개인의 능력치(힘)는 상대에게 뒤져도 함께 힘의 방향을 잘 맞춘 경우 더 빠르게 미션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팀 플레이, 강팀 만들기의 핵심은 마음을 모으는 합심입니다. 마음을 결집시킬 때도 방향이 잘 맞아야 큰 힘을 발휘합니다. 사진 한 장 놓고 같이 생각해 볼까요?
해외 전지훈련 중인 프로야구 팀의 미팅 장면입니다. 외국인 투수와 투수 코치의 대화인데요. 그런데 투수와 코치, 서로 어디를 봅니까?
두 사람의 눈길, 시선의 방향을 각각 따라가 보시죠. 어긋나 있네요. 투수는 코치를 응시하는데 코치는 중간에 있는 통역 직원을 보며 뭔가를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 투수라면 어떤 마음일까요? 이 외국인 투수는 이번에 한국 야구를 처음 경험하는 선수입니다.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이 선수는 답답할 겁니다. ‘코치가 나를 왜 안보고 말하지?’ ‘뭔가 피하는게 있나?’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해의 불씨입니다.
그렇다면 코치의 시선 처리에서는 어떤 마음이 느껴지나요? 아마 눈맞춤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잘 이해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면서 통역에게 시선이 쏠렸을 겁니다.
해커라는 투수와 한 팀에 있을 때 ‘아이 컨택 (eye contact)’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게 떠오릅니다. “코치가 나에게 지적할 게 있다면 그가 영어를 못하고, 내가 한국말을 몰라도 제발 내 눈을 보고 말해 주면 좋겠다.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그의 감정이나 분위기(상황의 심각성 같은)는 눈을 통해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겉으론 평온한 전훈 기간에 새로 합류한 선수는 강도를 올리는 훈련과정 외에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서로 다른 야구문화의 차이를 발견하면서 자신을 맞춰 갑니다. 그렇다면 코치와 투수가 가장 먼저 신경 쓸 일은 무엇일까요? ‘내 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데서 시작합니다. 어색해 하는 상대를 배려하고, 동료와 조직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을 눈맞춤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팀 워크의 싹이 틉니다.
어긋난 시선은 안타깝지만 일상에서 더 많이 보입니다. 다음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분 경험도 궁금해 집니다. 저는 서울의 어느 공유 오피스에서 입주 기업의 면접, 회의 장면을 종종 보는데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떤 관리자는 항상 노트북을 치면서 앞에 앉은 사람을 면담합니다. 앞서 보여드린 투수와 코치 같습니다. 관리자는 코치, 면담자는 투수, 노트북이 통역에 해당합니다. 면담자 표정은 사진 속 투수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계속 말을 하는데도 관리자는 거의 노트북만 봅니다. 마음의 교류, 교감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면담자가 애처로웠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기업 임원이던 지인이 하소연합니다. “우리 사장님도 그래. 나 앞에 놓고 노트북 치면서 미팅하는데 처음 몇 번은 숨이 턱 막혔어. 끝나면 ‘이렇게 말한 거 맞냐’고 노트북을 돌려 확인도 시킨다고. 마치 조사실에서 취조받는 것 느낌”이라고 말입니다. 그 사장님은 정확성을 기하려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경영진 회의에서까지 직접 노트북을 쳐야 했을까요? 어떤 대화가 이뤄지길 바랬던 걸까요? 기록을 남기는 다른 방법은 없나요?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해선 상대 표정 속에 담긴 감정과 뉘앙스를 놓칩니다.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요소의 비중은 7%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목소리 같은 청각적 요소는 38%, 표정 등 시각적 요소는 55%나 됩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커뮤니케이션의 ‘메러비안 법칙’입니다. 제발, 눈을 보세요.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A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