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다양한 규정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배경엔 '경기 시간을 줄이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있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적용된 이후 경기당 평균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MLB 경기당 평균 시간은 3시간 3분이었다. 2021년(3시간 10분)보다 7분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길다. 2016년부터 MLB 경기당 평균 시간은 3시간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2시간 46분이던 2003년과 비교하면 차이가 꽤 크다.
개정된 여러 규정 가운데 MLB 사무국이 기대를 거는 건 피치 클락이다. 과거엔 피치 클락이 주자가 출루했을 때만 적용됐지만 이번엔 아니다. 바뀐 규정에 따르면 주자가 없을 때도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받은 뒤 15초 이내 투구를 마쳐야 한다. 주자가 있을 때는 20초. 이를 위반하면 볼 하나가 선언된다.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이 규정을 적용한 MLB 사무국은 약 30분 정도 경기 시간이 줄었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경기당 평균 시간을 2시간 30분 전후로 만드는 거다. MLB는 미국 4대 프로 스포츠(NFL·NBA·MLB·NHL) 중에서 인기가 세 번째 정도인데 이 순위를 끌어올리고 젊은 팬을 유입하기 위해서 경기 시간을 줄이는 걸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MLB 시범 경기에선 바뀐 규정에 적응하지 못한 선수와 상황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6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노스포트 쿨투데이 파크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선 9회 말 만루 풀카운트에서 피치 클락이 적용, 경기가 6-6 무승부로 자동 종료됐다. 타석에 들어선 내야수 칼 콘리가 떨리는 순간 숨을 고르며 타석에 들어섰지만 이미 피치 클락을 오버한 것이다. 피치 클락이 돌아가면 타자들은 최소 8초가 남았을 때 타석에 들어가야 한다. 주자가 없으면 7초. 만약 정규시즌에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거다. 피치 클락은 언뜻 투수를 압박하는 요소처럼 보일 수 있지만, 타자도 마찬가지다. 콘리는 상대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받아들고 12초가 돼서야 타격 준비를 마쳤다.
한국 프로야구는 어떨까. 지난해 KBO리그는 경기당 평균 시간이 3시간 11분이었다. MLB보다 7분 길었다. 2021시즌보다 3분 빨라졌지만, 시간을 더 단축하려고 한다. 올해는 6분 빨라진 3시간 5분이 목표다. 경기 중 코치진의 마운드 방문 시간을 30초로 제한하고 피치 클락도 주자가 없을 땐 12초로 MLB보다 더 빠르게 진행할 계획이다. 시간을 처음 넘기면 볼 판정을 받고 두 번째로 어기면 20만원 벌금이 부과된다. 타자의 경우 한발은 반드시 타석에 걸치게 하는 이른바 '타석 이탈 제한'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이 역시 어기면 벌금이 20만원이다.
선수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벌금 규정보다 경기 자체에 영향을 주는 연속 볼 판정 같은 걸 부과하는 게 어떠냐는 생각이 든다. 타자의 경우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게 하는 게 더욱 공정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성적은 물론이고 팀 승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더 야구답지 않냐는 것이다. 마치 '네가 늦게 던지거나 타석에서 준비 못 했으니 벌금을 내라' 식은 오히려 선수들의 반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