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차기 대표 경선을 둘러싼 정치권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회사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다. 최종 후보를 가리기 위한 절차를 거듭할 때마다 정부와 여당 의원들이 불만을 표출하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불공정 경쟁 우려를 해소하겠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대주주 국민연금공단은 겉모습과 달리 주가 하락을 우려해 지분율을 축소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며 개미(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KT 지분율은 작년 11월 2일 10.63%에서 지난달 27일 8.53%로 뚝 떨어졌다. 약 548만주를 팔아치웠다. 해당 기간 KT의 주가는 17%가량 떨어졌다.
구현모 KT 대표가 지금껏 쌓은 탑이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이다. KT의 기업 가치는 구 대표가 취임한 2020년 3월 30일 이후 54% 이상 상승했다.
지분율 변동 사유를 묻자 국민연금 관계자는 "개별 종목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는다"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도 '단순 추가 처분'이라고만 명시했다.
국민연금이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매수 또는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의 스피커 역할을 자처하며 KT 대표 후보 선임 과정을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등 주가를 흔든 파급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이에 국민연금이 주가 하락을 유도하고 뒤로는 주식을 정리했다고 지적하는 개미들이 적지 않다.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는 "국민연금이 주가를 흔들었다" "KT는 사기업, 관치는 물러나라"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국민연금이 KT를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28일이다. 연임이 확실시됐던 구현모 대표가 자진해 복수 후보 검토를 요청했는데도 최종 후보로 확정되자 3시간 만에 보도자료를 내서 이의를 제기했다. CEO(최고경영자)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스튜어드십(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경영 관여)은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 구성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민영화한 공기업이나 금융사를 향한 발언이다.
이에 KT는 지난달 9일 모든 절차를 백지화해 공개경쟁 방식으로 대표 선임 프로세스를 재추진하기로 했다. 이어 28일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부문장·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임헌문 전 KT 매스 총괄 등 4명의 후보를 공개했다. 구현모 대표는 외압을 견디지 못하고 연임을 포기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는데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박성중·김영식 의원은 이달 2일 기자회견을 열어 KT 차기 대표 경선이 전·현직 임원으로만 꾸린 '그들만의 리그'라고 못을 박았다. 같은 날 대통령실 관계자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로운 대표를 맞이하기 위한 최종 관문은 이달 말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다. 외풍에 맞서 7일 최후의 후보 1인을 발표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국민연금은 주식 대량 매도로 KT 지분율이 10%대에서 8%대로 낮아지며 2대 주주 현대자동차와의 격차가 1%포인트 이내로 줄었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표 싸움 기준인 주주명부 폐쇄일 2022년 12월 27일 기준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10.13%이기 때문이다. KT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2·3대 주주 현대차와 신한은행 지분율은 각각 7%대, 5%대이지만, KT와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라 반대 입장을 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후보 4인이 동반 사퇴해도 주총은 열린다. 대부분 회사가 정관에서 결산 종료일로부터 3개월 안에 개최하도록 정하고 있어서다. 대표 선임도 안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게 KT 측 설명이다.
우여곡절 끝에 신임 대표가 선임되더라도 정부와 여당의 흔들기로 추락한 주가를 다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구현모 대표의 연임 포기와 새로운 CEO 후보에 대한 정치권의 언급, 정부의 요금 인하 압력 등 여러 외부적인 요인으로 KT의 주가는 부진하다"며 "내외부적으로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빨리 대표가 선임돼 KT가 안정되길 바라는 주주들은 애가 탄다. 주총에 참석할 예정인 한 주주는 "KT가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로서 여러 성장사업으로 매출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주주 가치와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인물이 대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