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를 표방하는 한국의 여러 인물들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제공)
이단(異端).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끝이 다르다는 의미다. 시작은 같았지만 다른 결론을 맺게 되는, 정통 교의에서 많이 벗어난 종교를 일컫는다. 이러한 종교를 또 다른 말로 사이비(似而非)라 한다.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뜻이다.
시작이 같고 비슷해 보이는 이런 점이 어쩌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걸까. 사이비 종교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사회면에 보도되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공개될 때면 사회에선 한 번씩 파란이 분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했다고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들. 사람들은 말한다. “도대체 저런 종교에 왜 빠지는 거야”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 몇 년쯤 됐을 무렵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고교 동창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짝꿍도 했던 그 친구에게 나는 습관처럼 “너는 대학교 가고 사회에 나가면 그때부터 빛이 날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친구는 내가 했던 그 말이 기억에 남아서 연락했다며 언제 한 번 시간을 내 보자고 했다.
만남은 평범했다. 친구는 어린이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착실하게 돈을 모아 편의점 점포도 하나 냈다. 어떤 상권이 장사가 잘되는지, 아르바이트는 어떻게 고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야무지게 했다. 친구는 “사실 번호 정리를 하고 있었다”면서 “네가 해줬던 이야기가 너무 인상 깊어 네 번호는 차마 지우지 못 하겠더라”고 했다. 도리어 그 말이 고마워 몇 번 더 만남을 가졌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건 세 번째 만남에서였다. 지난 두 번의 만남을 통해 친구는 내가 연예 담당 기자이며 뮤직 페스티벌 같은 곳에 가는 걸 즐긴다는 걸 알게 됐다. 고등학교 때와 다름없이 종교는 없었고, 독신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친구는 “네가 관심을 가질 만한 좋은 페스티벌이 있다”면서 “평화에 대한 주제로 진행되는 것인데 관심 있으면 함께 가 보자”고 제안했다. 음악, 페스티벌, 평화. 모두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였다. 아무런 의심 없이 “좋다”고 했다.
대화는 그 다음부터 이상해졌다. 일단 페스티벌 이름이 너무 어려웠고, 영어로 돼 있었으며, 검색해도 정보가 확실히 나오지 않았다. 함께 가자며 날짜를 잡는데 친구가 “나는 스태프 같은 개념이라 먼저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너는 다른 사람과 같이 와야 한다”며 아는 오빠를 소개해 줄 테니 함께 단체 버스를 타고 오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집으로 돌아와 친구가 말해준 페스티벌의 이름을 여러 루트를 통해 검색했다. 해외 포털에서 그 페스티벌이 ‘사이비’라 불리는 한 특정 종교의 교주 관련 행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친구에게 묻자 그는 “절대 종교 행사가 아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라고 발뺌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가긴 할 텐데, 만약 갔다가 거기가 페스티벌을 표방해서 포교 활동을 하는 곳이라면 나는 기사로 쓸 수밖에 없다”고 답을 했다. 더 이상 답장은 없었다. 아마 번호를 차단한 것 같았다.
알고 보니 혼자 사는 고학력자 독신 여성은 그 종교에서 포교 대상으로 선호하는 조건이었다. 순수한 안부 연락이라 생각하고 반가워했던 지난 몇 번의 만남이 떠올랐다. 내가 그를 반가운 친구라 여기는 동안 그쪽은 나를 ‘포교하기 적합한 대상’으로 여기고 접근했던 거란 사실이 특히 슬펐다. 포교를 위해 썼을 그 인간적인 가면들이 도리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그때 알았다. 인간에 대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나 예의를 말살하는 것이 그러한 종교들이 자신들의 세를 확장하는 방법이라는 걸. 한 번 그런 식의 사고를 하게 되면 다시 일상적 감각을 찾는 것이 무척 어려우리라는 걸.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의 만남을 이따금씩 떠올린다. 그 종교가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또 다른 사이비 종교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그 친구는 괜찮은지 안부를 걱정하게 된다. 그는 그렇게 몇 명의 사람을 잃었을까. 혹시 돌아올 곳이 없다는 생각에 계속 그곳에 남아 있진 않을까.
누군가는 “대체 왜 그런 종교에 빠졌어”라며 이해할 수 없어 하겠지만, 사이비의 문턱까지 갔던 입장에서 저런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꾀어내기 위해 맞춤형으로 다가오는데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혹여 어딘가에서 이 기사를 볼지 모를 친구에게 꼭 말하고 싶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연락해도 괜찮다고. “나한테 왜 그랬느냐”고도, “어쩌다 그런 곳에 빠져든 거냐”고도 따져 묻지 않겠다고. 그저 당신이 안온하길 바라는 누군가가 여전히 이 사회에 있다는 것. 그 믿음이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의 한 부분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