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나 있었습니다. 어떠한 종교를 믿었다는 것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잘못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만들어서 잘못된 길을 가게 하는 교주에게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를 연출한 조성현 PD는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나는 신이다’ 공개 이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 문제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나는 신이다’는 JMS, 오대양,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등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을 조명,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며 대한민국을 뒤흔든 네 명의 사람들과 이들을 둘러싼 피해자들의 비극을 다뤘다. 8부작으로 구성된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3일 공개된 이후 사회 곳곳에서 많은 유의미한 움직임을 이끌어내고 있다.
종교 내부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만큼 위 종교들에 몸담았던 신도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내에 자세하게 담겨 있다. ‘더 의심하지 못한 죄’로 인간을 신으로 받아들여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된 피해자들. 특정한 계기로 각 종교에서 탈퇴한 이들은 “왜 그런 종교를 믿었느냐”는 세간의 비난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어떤 사람은 얼굴을 공개했고 어떤 사람은 감췄는데, 조성현 PD는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다. 얼굴을 공개한 기준은 피해자 본인이 원했는가다. 조 PD는 “어떠한 피해자는 교주에게 성적 피해를 당한 사실을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다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용기를 내 줬다”고 말했다.
‘나는 신이다’에서 특히 몇몇 탈교자들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JMS 내에서 한때 ‘스타’라 불릴 만큼 이름을 크게 날렸으나 교주 정명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전 신도 메이플과 1987년 아가동산에서 사망한 아동 최낙원 군의 친부모, 검찰이 아가동산을 습격했을 당시 교주 김기순을 피신시켰던 신도, 만민중앙교회의 고액 헌납자 등이다.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면 오히려 얼굴을 공개하지 않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조성현 PD는 “얼굴을 공개해야 남들이 믿어줄 거라고 생각한 분들은 공개를 결정했다.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라 도리어 얼굴을 내놓고 싶어 하더라”고 설명했다.
‘나는 신이다’는 이 같은 전 신도들의 이야기가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프로그램이다. 교주가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내부에서 어떤 비리가 벌어진다 해도 신도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면 누구도 알지 못 했을 것이다.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도록 설계한 기묘한 시스템 속에서 성폭행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던 탈교자들이 입을 열어준 건, 이 같은 이유에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공개된 이후 안타까운 반응도 있었다. 누군가는 얼굴을 공개한 성범죄 피해자들의 외모를 품평하며 2차 가해를 했고, 신도들이 과거 해당 종교에 몸담았을 당시 저질렀던 잘못을 근거로 비판하는 여론도 있었다. 이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기를 낸 이들에겐 다소 가혹한 일이다.
조성현 PD는 “사실 얼굴을 공개해준다는 건 PD로서 고마운 일”이라며 JMS의 경우 얼굴을 가리고 누군가 증언을 하면 ‘저건 실제가 아니다’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얼굴을 가린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메이플 같은 신도들이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이젠 그들의 반박논리가 통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분들의 용기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교주가 시킨다고 하느냐”는 비난에 대해서도 조 PD는 “솔직히 그렇게 물으면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봐’밖에 없다”며 “그런 공격에 제대로 해명할 말이 없음에도 자신이 겪은 피해를 다른 사람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용기를 내준 분들이다. 그분들은 존경을 받아야지 비난이나 조롱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어떤 종교를 믿는가는 그 자체로 죄가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벌어진 어떠한 범죄 행위 등에 가담했을 때 비로소 잘잘못을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이다. 조성현 PD는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게 아니라면 특정 종교인이라는 것만으로 마녀사냥을 벌여선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