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감독 시절 스스로 ‘난 놈’이라는 별명을 지은 주인공. 선수 시절 플레이메이커 역할과 골, 도움까지 다방면에 능한 만능 플레이어였고, 소속팀은 밥 먹듯이 우승하는 리그의 절대강자였다. 동시에 시대를 앞선 팬 서비스로 프로가 무엇인지, 상품성을 갖춘 스타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줬던 선수. 바로 신태용(53)이다.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프로축구 40주년 베스트11 미드필더진에는 신태용의 이름이 있다. 명단을 선정한 전문가 패널 중에는 11명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꼽으면 단연 신태용이라고 평가한 이들도 있었다.
신태용은 K리그를 대표하는 기록 제조기이자 스타였다. 한국 프로축구 역대 베스트11을 꼽을 때는 리그에서보다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선수들도 자주 거론된다. 그런데 순수하게 리그에서의 활약만 놓고 봤을 때 신태용만큼 큰 자리를 차지하는 거인은 많지 않다.
현재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과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동시에 맡고 있는 신태용 감독을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신태용은 영남대 졸업 후 1992년 일화 천마(현 성남FC)에 입단했다. 그리고 2004년까지 한팀에서만 뛰며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지금은 기록이 깨졌지만, K리그 최초로 60-60을 기록한 주인공이다. 100골 가까이 넣은 K리그 미드필더는 신태용이 유일하다.
데뷔 시즌 신인상을 탄 신태용은 3년 후인 1995년 20-20(20골-20어시스트 이상)을 달성했고, 그해 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1995년 포항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큰 활약을 하고 MVP로 뽑힌 순간은 신태용 감독이 말하는 ‘선수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신태용은 1996년 득점왕에 오르고 2년 연속 MVP를 거머쥐었다. 그는 2001년에도 MVP에 등극했다. 루키 시즌이던 1992년부터 5년 연속 베스트11에 선정되는 등 총 9차례 베스트11로 뽑혔다.
신태용은 스타 군단 성남의 독주에 큰 힘을 보탰다. 신태용은 성남 입단 직후 고정운, 사리체프, 이상윤 등과 호흡을 맞추며 3년 연속 우승을 맛 봤다. 2001년부터는 김도훈, 싸빅, 이기형, 윤정환, 김대의 등과 함께 성남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신태용은 현역 시절 박종환, 차경복, 김학범 감독 등 리그 최고의 명장들과 함께 했다.
신태용 감독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투톱에서 섀도 스트라이커를 서거나 공격 쪽으로 치우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주로 했다. 득점과 어시스트를 모두 할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고 회상하면서 “골 넣는 것을 좋아한다. 골 냄새를 잘 맡는 편이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어시스트가 어려웠다. 상황이 다소 애매할 때는 어시스트로 잡히지 않을 때도 많았다. 30-30을 달성한 다음에야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우리팀 멤버가 워낙 좋아서 그 덕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성남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K리그 우승을 휩쓸어갔던 팀이다. 신태용 감독은 “이런 말이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땐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고 회상했다.
20-20을 넘어 미드필더로서 60-60까지 신기록을 이어갔던 그는 “기록에는 늘 욕심을 갖고 뛰었다. 하지만 부담은 느끼지 않았다. 당시 미드필더로서 골을 많이 넣는 선수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 기록을 이동국, 염기훈 등 후배들이 하나씩 깨 나가는 걸 보면서 섭섭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고, 후배들을 더 응원한다”고 말했다.
신태용이라는 선수가 더 특별했던 건 그가 과거 K리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유머 감각과 톡톡 튀는 팬 서비스 마인드를 갖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신태용은 K리그 통산 99골에서 은퇴했다. 그는 선수 마지막이던 2004시즌에 “100번째 골은 반드시 필드골로 넣겠다”고 선언하고 이후 페널티킥 기회가 와도 차지 않았다. 사실은 이렇게 선언했을 때 시즌이 꽤 많이 남은 상황이어서 충분히 100골을 채울 거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지만, 결국 필드골을 추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태용은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99골에서 멈춰섰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한 인터뷰에서 “그냥 페널티킥을 찰 걸 그랬다”고 농담 섞인 고백을 하기도 했지만, 팬과의 약속으로 이슈를 만들어내고 이를 뚝심 있게 지킨 사실은 지금 돌아봐도 놀랍다.
2003년에는 또 다른 에피소드도 있었다. 성남과 수원의 경기 도중 코너킥을 차기 위해 잠시 서 있던 신태용이 수원 팬이 던진 물병이 날아오자 이를 주워서 태연하게 마신 장면이 아직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신태용 감독은 “수원 팬들에겐 그때 내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안그래도 더운데 물통을 던지길래 고맙다고 마셨다”라고 웃었다.
신태용은 2009년 성남 감독을 맡아 첫승을 거둔 직후 절친한 사이인 레슬링 대표 심권호의 ‘쫄쫄이 레슬링복’을 입고 심권호와 함께 물을 뿌리는 세리머니를 하는 등 지금도 화제가 되는 재미있는 장면을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었다.
그의 '팬 퍼스트' 행보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나머지 당시엔 ‘가볍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철학을 갖고 진지하게 말한다.
신태용 감독은 “난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나쁜 게 80, 좋은 게 20이면 좋은 부분 20부터 보려고 한다”면서 “팬서비스에 관해서는 선수 때부터 지금까지도 늘 진심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팬에게는 ‘무한리필’을 해드려야 된다. 축구팬을 존중하고 성심성의껏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