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우리 미래의 가장 주된 축인 카카오와 ‘플랫폼’에 대한 협의를 끌어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최근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의 중단을 선언하고 인수 경쟁을 벌여온 카카오와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사안을 마무리한 것에 대해 만족감을 밝혔다. ‘SM 인수전에서 카카오가 승리했다’는 세간의 평가와 관련해 하이브가 진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방 의장은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 연사로 나섰다. 이번 포럼은 방탄소년단을 세계적 뮤지션으로 키운 방 의장에게 한국 문화의 미래를 듣는 자리로 마련됐다.
‘K팝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방 의장의 기조연설 후 질의응답 시간에 되자 첫 질문부터 최근 가장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로 주목받았던 하이브와 카카오의 SM 인수전과 관련된 질문이 나왔다.
방 의장은 당황한 기색 없이 “당연히 질문이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첫 질문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며 웃어 보였다.
◇ 하이브, SM인수 시도는 2019년부터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SM 인수 과정과 배경을 설명했다. 방 의장에 따르면 하이브가 SM의 인수 카드를 만지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로, 두 차례 제안을 했지만 당시 SM은 이를 거절했다. 하이브 내부에서도 SM 인수에 대해 “K팝의 덩치를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는 찬성 입장과 “그 정도의 돈을 미래적이고 혁신적으로 쓰는 게 맞다. 하이브가 K팝만 하는 회사가 아니다”라는 반대 입장이 나뉘어 있었다.
2022년 중순, 방 의장은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와 SM 인수를 다시 고민하게 됐지만 결국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SM 인수와 거리를 뒀다. 그러던 중 방 의장은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에게 연락을 받았다.
이 전 총괄과 지분 인수에 대해 논의하면서 SM을 평화적으로 인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방 의장은 “이 뒤에 일어난 시장의 과열, 생각 이상의 치열한 인수전은 저희의 예상 밖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전 총괄의 지분을 확보한다면 SM 인수가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방 의장은 그러나 “하이브가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게 있었는데, (인수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 가치를 넘어섰다”며 “하이브에는 하이브스러운 결정이 있다. 그런 결정이 맞느냐는 고민을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저희의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시장 질서를 흔들면서까지 (SM 인수전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인수 비용은 숫자만 보이지만, 인수에 들어가는 유무형의 비용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면서 “구성원들의 감정 노동까지 감내하는 것은 저희에게 옳은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래 로드맵인 글로벌로 나가자는 결정을 하게 됐다”고 인수를 포기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 카카오vs하이브 구도..“승패 관점엔 동의 못해”
방 의장은 “결국 카카오 승, 하이브 패라는 여론이지 않나”라는 질문에 SM 아티스트 보아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주 주말에 보아 씨가 데뷔 20주년 콘서트를 했다. 축하드린다”며 “사실 기업이 K팝을 이 자리까지 끌어오는데 굉장히 큰 기여를 했다. 그런데 이 산업 전체를 기여하는 건 본인의 업을 다한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방 의장은 “인수를 전쟁으로 바라보는 자극적인 말에도 아티스트는 자기의 자리에서 가슴앓이를 하면서 본인의 일을 충실히 했고, 팬들은 그들을 응원했다”면서 “실제 인수 과정에서 아티스트와 팬을 배려하지 못했다. 매니저먼트 입장에서 굉장히 가슴이 아프고 미안했다”고 고개숙였다. 방 의장은 아티스트와 팬들의 행복이 하이브의 근본이라며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다만 방 의장은 ‘인수’를 승패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또 “지켜보는 사람들 관점에선 재밌게 바라볼 수 있지만, SM의 지배구조 해결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과 하이브스러운 결정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방 의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 SM 내부의 문제를 해소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 이수만 전 총괄 “하이브가 이길 수 있었다”는 반응
현재 하이브는 SM 지분 15% 이상(15.78%)을 보유하고 있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을 신고해야 한다. 방 의장은 이 지분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지금 사업팀을 휴가 보냈는데, 그분들이 돌아오면 (지분 운용 방법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합리적으로, 도리에 맞게 선택하려 한다”고 말을 아꼈다.
가장 이목이 집중 됐던 질문은 바로 하이브와 카카오의 합의에 대한 이 전 총괄의 반응이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연 방 의장은 “(카카오와) 합의 중간에는 이수만 선생님에게 말씀드리지 못했다”며 “왜 우리가 이런 선택을 했는지 합의가 끝나고 소상히 말씀드렸고, 특별히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으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길 수 있는데 왜 그만하지?’라는 얘기만 한 게 다였다”며 “한참 후배 앞에서 ‘실망스럽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이브는 SM 자회사 지분 등에 대한 인수 계약 중 10년간 총 1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ESG 사업 관련 계약을 맺었다. 방 의장은 ESG와 관련해 “이 얘기는 지난해 7월 이사회에서 얘기가 나온 것”이라며 “개인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형식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