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35·흥국생명)은 '어쨌든'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꺼냈다. 그는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하고 '어쨌든'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게 된다"고 웃으며 "어쨌든 1위에 올라 기분 좋다"고 말했다. 1위 확정까지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험난했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 원정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승했다. 승점 79을 기록한 흥국생명은 잔여 경기와 관계 없이 2위 현대건설의 추격을 따돌리고 정규시즌 1위를 확정했다. V리그 여자부 최다 6번째이자, 2018~19시즌 이후 4년 만에 챔피언 결정전에 직행했다.
우승의 주역은 단연 김연경이다. 여자부 최고 대우를 받고 흥국생명에 돌아온 김연경은 공격성공률 1위(45.76%), 득점 5위(669점, 국내 선수 1위)에 올랐다. 리시브(9위)와 디그(10위) 등 수비에서 역할도 컸다. 이번 시즌 라운드 최우수선수(MVP) 세 차례 뽑혔다. 김연경도 당당하게 자신의 팀 공헌도를 인정했다. '김연경 효과'를 묻는 말에 "(우승까지 오는 데 있어) 내 영향력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웃었다.
김연경이 데뷔 3년 차이던 2007~08시즌 이후 V리그 정규시즌 1위를 탈환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김연경은 2008~09 시즌을 끝으로 해외 무대에 진출, 일본-터키-중국에서 활약하며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우뚝 섰다. 해외 리그 우승과 득점상, MVP를 여러 차례 달성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둔 김연경은 2020~21시즌 11년 만의 V리그에 복귀했다. 김연경과 이재영-다영이 함께 뒨 흥국생명은 '흥벤져스'로 불리며 역대 최고 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쌍둥이 자매의 '학폭 논란'이 터진 후 팀이 휘청였고, 결국 준우승에 그쳤다. 김연경은 "해외에서 오랫동안 뛰어 국내에서 우승할 기회가 없었다. 2년 전 준우승에 그쳐 너무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이번 시즌에도 상상하지 못한 큰 위기가 닥쳤다. 선두 현대건설을 맹렬히 쫓던 1월 초, 흥국생명이 권순찬 전 감독을 경질했다. 김연경은 충격에 휩싸였고, 선수들도 동요했다. 이영수 수석코치는 감독대행으로 한 경기만 지휘하고 떠났다. 신임 사령탑에 내정된 김기중 선명여고 감독은 부정적인 여론 탓에 감독 부임을 고사했다.
이후 지도자 경력이 짧은 김대경 코치가 한 달 넘게 팀을 이끌었다. 김 코치가 팀을 잘 수습하는 사이, 야스민 베다르트가 허리 부상으로 빠진 현대건설이 크게 흔들렸다. 결국 흥국생명은 5라운드 추월에 성공했고, 2월 중순 소방수로 투입된 이탈리아 출신 '명장'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이 1위를 확정 지었다.
"부끄럽다. 이런 팀이 또 있을까"라며 작심 발언을 내놓았던 김연경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그렇다 보니 1위 확정 후 자신도 모르게 '어쨌든'이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는 "개막 전엔 우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등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의문이 많았다"라며 "권순찬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감독님 덕에) 비시즌부터 팀이 잘 나갔다. 감독님이 (팀을) 잘 만들어주셔서 이런 좋은 결과가 있었다"라고 했다. 이어 "감독님이 경질되고 누구보다 힘들어했는데, (김해란) 언니가 버티고 있어서 힘든 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김해란은 "연경이에게 가장 고맙다. 누구보다 연경이가 아주 힘들었을텐데 잘 참고 이끌어줬다"라고 말했다.
김연경은 지난달 은퇴 고민을 드러냈다. 아직 최종 결정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2022~23시즌이 김연경이 선수로 뛰는 마지막 시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챔프전 피날레가 더욱 중요하다. 김연경은 "우리가 (우승에) 유리하다. 챔프전까지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