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 베어스가 지난 9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훈련을 했다. 외국인 투수 알칸타라가 롱토스하고 있다. 잠실=정시종 기자
"외국인 선수만 봐도 일본과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그게 현실이다."
지난 15일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시범경기가 끝난 뒤 한 구단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날 경기에서 두산 선발 라울 알칸타라(31)는 3이닝 3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쾌투했다. 매 이닝 안타를 허용했지만, 후속 타자를 범타 처리하며 무난하게 시범경기 첫 등판을 마쳤다.
알칸타라가 눈길을 끈 건 그의 '이력' 때문이다. 알칸타라는 2019년부터 2년 동안 KT 위즈와 두산에서 뛰었다. 2020년에는 198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하며 20승(2패)을 달성, 다승왕과 승률왕에 올랐다.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받으며 'KBO리그 최고 투수' 타이틀을 달았다.
그의 활약을 눈여겨본 구단은 일본 프로야구(NPB) 한신 타이거스였다.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한신은 2년 계약으로 알칸타라를 영입했다. 현지 언론에서 추정하는 알칸타라의 연봉은 200만 달러(26억원)에 이른다.
한신의 투자는 '실패'였다. 알칸타라는 2021년 3승에 그쳤다. 들쭉날쭉한 피칭 탓에 시즌 중반 보직이 선발에서 중간 계투로 밀렸다. 지난해에는 불펜으로만 39경기 등판해 18홀드를 챙겼지만, 평균자책점이 4.70으로 높았다. 에이스 역할이 기대된 자원을 불펜으로 기용한다는 건 궁여지책에 가까웠다. NPB 통산 성적은 4승 6패 23홀드 평균자책점 3.96. KBO리그에서 시즌 20승을 기록한 위엄은 온데간데없었다. 결국 시즌 뒤 자유계약으로 공시, NPB 생활을 정리했다. 거취에 물음표가 찍힌 알칸타라에 손을 내민 건 친정팀 두산이었다.
2013년 KBO리그 공동 다승왕에 오른 뒤 이듬해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했지만 리그 적응에 실패, 국내로 리턴한 크리스 세든. IS 포토
알칸타라 같은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2013년 KBO리그 공동 다승왕에 오른 왼손 투수 크리스 세든(당시 SK 와이번스)이 2014년 NPB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부진한 뒤 2015년 7월 SK와 다시 계약했다. 세든은 요미우리에서 4승에 그쳤고 평균자책점까지 4.67로 높았다.
2020년 12월 한신과 계약한 외야수 멜 로하스 주니어의 실패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로하스는 KT 소속이던 2020년 47홈런 135타점을 기록, KBO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은 물론이고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한 '괴물 타자'였다. 하지만 한신에 몸담은 2년(2021~22) 동안 타율이 0.220(372타수 82안타)에 그쳤다. 거포 윌린 로사리오(전 한화 이글스) 왼손 투수 데이비드 허프(전 LG 트윈스)를 비롯해 NPB에서 실패한 KBO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 사례가 적지 않다.
공교롭게도 최근 KBO리그 구단은 외국인 선수 시장에서 일본을 주목한다. NPB에서 실패한 선수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데이비드 뷰캐넌, 호세 피렐라(이상 삼성 라이온즈)는 NPB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KBO리그에선 180도 다른 모습이다. 두 선수의 활약에 고무된 삼성은 지난해 NPB 출신 알버트 수아레즈까지 영입했다. 올 시즌 애니 로메로(SSG 랜더스) 버치 스미스, 브라이언 오그래디(한화)를 비롯해 적지 않은 NPB 출신 외국인 선수가 영입됐다.
현장에선 "일본 출신 선수를 영입하는 게 트렌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NPB에서 퇴출당한 외국인 선수가 KBO리그에서 활약하고, KBO리그를 호령했던 외국인 선수들은 NPB에서 고전한다. 그만큼 희비가 극명하다.
한 구단 외국인 스카우트는 "일본은 최근 메이저리그 에이스 출신 트레버 바우어가 넘어가지 않았나. 리그가 투자할 수 있는 금액과 맞물려서 외국인 선수의 수준 차이도 명확하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실패 등) 한국의 국제대회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