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바람이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봄은 기어코 오고야 만다. 그러나 진해 벚꽃보다 라디오에서 먼저 봄이 온다. 매화와 산수유를 거쳐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필 무렵이면 전국의 라디오들이 일제히 애청자들에게 봄노래를 들려주면서 축제를 펼친다.
김현철의 ‘봄이 와’를 비롯해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로이킴의 ‘봄봄봄’, 선우정아의 ‘봄처녀’, 이문세의 ‘봄바람’, 로꼬와 유주의 ‘우연히 봄’, 10센치의 ‘봄이 좋냐’, 방탄소년단(BTS)의 ‘봄날’, 볼빨간사춘기의 ‘나만 봄’ 등이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봄이 오면 라디오 방송국들이 단골손님처럼 틀어대는 봄노래들이다.
10개의 곡 모두 21세기 들어 등장한 노래들이다. 이 곡들 중 2023년 3월 현재 가장 많이 방송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노래는 누구의 것일까?
세계 최고의 스타로 군림해온 방탄소년단의 ‘봄날’보다 더 많이 방송되고 있는 노래는 뜻밖에도 이문세의 ‘봄바람’이다. 전국의 공중파 라디오와 TV방송을 모니터하는 차트코리아의 3월 셋째 주 방송순위에 따르면 이문세의 ‘봄바람’은 3월 6일부터 12일까지 한 주 간 109회 방송되며 같은 기간 60회 방송된 BTS의 ‘봄날’을 3위로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봄바람’은 이문세가 지난 2015년 4월 초 발표한 곡으로, 따뜻한 햇살아래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라일락꽃을 보며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그렸다. 서정적이고 정감이 넘치며, 녹음에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나얼이 참여해 브리지를 멋지게 장식했다.
이문세의 ‘봄바람’은 2021년과 2022년 3월 셋째 주 방송순위에서도 1위를 했다. BTS가 2017년 발표한 ‘봄날’은 같은 기간 5위와 3위를 기록했다. 긴 겨울을 지낸 사람들은 아무래도 눈발 날리는 ‘봄날’보다 꽃향기 풍기는 ‘봄바람’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2023년 방송순위에서는 ‘봄바람’과 ‘봄날’ 다음으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5위, 로이킴의 ‘봄봄봄’이 6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선우정아의 ‘봄처녀’(10위), 10센치의 ‘봄이 좋냐’(12위),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13위), 로꼬와 유주의 ‘우연히 봄’(17위), 김현철의 ‘봄이 와’(19위) 순이었다.
놀라운 점은 박인희가 1974년 발표한 ‘봄이 오는 길’이 37회 방송되며 16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그 외에 캔이 2001년 발표한 번안 가요 ‘내 생애 봄날은’(26위)과 양희은의 1983년 발표 곡 ‘하얀 목련’(28위)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에는 방송에서 자주 접하기 어렵지만 60대 이상의 시니어들이 좋아하는 봄노래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1953년), 최갑석의 ‘삼팔선의 봄’(1959년), 박재란의 ‘산 너머 남촌에는’(1965년) 등이 있다.
가요는 아니지만 홍난파 작곡의 가곡 ‘봄처녀’(1932년)도 매년 봄이면 자주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곡이었다. 이은상의 시조에 곡을 붙인 노래로 선우정아가 자신의 곡 ‘봄처녀’에서 변주해 브리지로 사용한 바로 그 곡이다.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로 유명한 백설희의 대표곡이자 데뷔곡인 ‘봄날은 간다’는 가수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으로 꼽힌다. 김도향 나훈아 조용필 이동원 최백호 김정호 심수봉 한영애 장사익 주현미 이선희 말로 곽진언 송가인 양지은 린 등 노래 좀 부른다는 가수치고 부르지 않은 가수가 없을 정도로 가수들이 매년 도전하는 봄노래 중의 봄노래로 꼽힌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되는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박시춘 작곡)는 특히 2009년 계간지 시인세계가 현역시인 100명을 상대로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로 뽑힐 정도로 시인들 사이에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
가수들의 성별에 따라 음색에 따라 듣는 감흥이 다른 게 ‘봄날은 간다’의 매력이다. 따뜻한 봄날 좋아하는 가수가 부른 봄노래를 찾아 감상하다보면 절로 행복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