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냉면만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대동강에서 잡히는 숭어로 국을 끓이는데, 평양에 가면 숭어국은 먹고 와야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숭어는 마산 출신인 저에게도 매우 친숙한 생선입니다. 숭어회는 먹었어도 숭어국은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다른 지역의 사정은 어떤가 탐문을 해보니 숭어로 국물 음식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숭어로 왜 국을 잘 끓이지 않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동강 숭어국이 유명하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이면 대한민국 여기저기에서 흔히 먹을 만한 음식인데 말이지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의 금요미식회에서 숭어를 다루자고 한 것은 제철 숭어회를 맛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숭어회는 횟집에서 맛없는 생선회로 취급하는 관습이 있어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숭어의 필렛을 사면 집에서도 간단히 회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숭어에 이어 봄에는 숭어가 맛있어지니 이 두 생선의 맛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겠다 싶었지요. (참숭어, 개숭어, 밀치 등등 숭어 이름이 지역마다 다 다른데, 숭어는 딱 두 종류만 있다고 기억하면 됩니다. 가숭어와 숭어. 제철은, 겨울엔 가숭어, 봄엔 숭어) 숭어회만 내놓기가 허전하여 평양 숭어국을 떠올렸지요. 그런데, 이건 제가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입니다. 그냥 재미로 해보자는 생각이었지요. 해보고 맛없으면 방송에서 이러면 되니까요. “평양 대동강 숭어국이 유명하다고 해서 저희도 해봤는데, 맛이 없어요.”
저와 함께 금요미식회를 진행하는 딴지일보 김정수 기자가 제게 여러 자료를 보냈습니다. 평양을 방문한 분들이 올려놓은 숭어국 사진도 있고 북한이 자랑삼아 내놓은 숭어국 사진도 있었습니다. 여느 생선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북한 음식을 공부하기 위해 사놓은 북한 책이 있습니다. '조선의 민속전통'이라는 7권짜리 민속백과사전입니다. 1994년에 발간되었는데, 북녘의 민속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 책에 숭어국 조리법이 올려져 있습니다. 그대로 옮깁니다. 음식감 : 숭어 300g, 후추알 10알. 만드는 법: ①숭어는 깨끗이 손질하여 물기를 없애고 뼈를 발라낸 다음 길이 4㎝정도로 토막 낸다 ②남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숭어를 넣은 다음 후추를 천에 싸서 두고 끓인다. 아니, 이게 전부라고? 숭어에 후추알이 전부라고? 혹시 조판 실수로 문장에 잘려나간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최종에는, 이 책의 조리법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맛없으면 또 어떻습니다. 방송에서 “숭어국 맛없어요” 하면 되니까요. 소금 간은 해야 할 것인데, 워낙 기본적인 것이라서 생략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정수 기자에게 '조선의 민속전통' 숭어국 조리법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냈습니다. 김 기자의 표현이 이랬습니다. “후덜덜.” 믿고 해보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방송을 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갔더니 김 기자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맛이 안 나는데, 10분 정도 지나면 흐릿하게 감칠맛이 나고, 20분 정도 지나면 정말 고운 맛이 나와요. 끓인다기보다 고는 거죠. 숭어 살이 단단하니까 이게 가능해요.” 맛있다는 거 웬만큼 먹어봤지만, 이건 정말 예술입니다. 숭어와 후추만 달랑 들어갔는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다니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찬찬이 분석을 했습니다. 생선국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뼈와 머리를 제거했다는 게 이 숭어국 조리법의 포인트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20분을 끓여도 흩어지지 않는 단단한 살. 숭어만이 아니라 단단한 흰 살 생선이면 ‘후추 10알’만으로 충분히 맛있는 국물을 낼 수 있을 듯하였습니다. 맑고 깊은 숭어국을 훌훌 먹으며 생각했습니다. 요즘 한국음식 조리법이 양념법밖에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재료에 집중하는 조리법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