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을 앞두고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가 한 말이다.
오타니는 2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2023 WBC 결승 전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의 부탁을 받고 선수들 앞에 선 오타니는 "(미국을) 동경하는 걸 그만하자. 1루에 폴 골드슈미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있고 중견수에 마이크 트라웃(에인절스) 외야에 또 무키 베츠(LA 다저스)가 있다. 야구하면서 누구나 들은 적 있는 선수들이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이 선수들을) 동경하게 되면 넘을 수가 없다"며 "우리는 최고가 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오직 이기는 것만 생각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오타니의 짧은 연설이 끝나자 일본 선수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불과 몇분 뒤 그라운드로 뛰어나간 일본 선수들은 WBC 결승에서 미국을 3-2로 꺾었다. 2006년과 2009년 1·2회 대회 우승국 일본은 14년 만에 WBC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정상을 탈환했다. 현역 빅리거가 총출동하는 WBC는 야구 국제대회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일본은 한국이 포함된 1라운드 B조를 4전 전승으로 통과한 뒤 8강에서 이탈리아, 4강에서 멕시코를 꺾은 데 이어 미국까지 제압, 7전 전승으로 '퍼펙트 우승'을 달성했다. WBC 통산 성적이 30승 8패. 반면 2019년 미국은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2연패에 도전했지만, 일본을 넘지 못했다.
일본과 미국이 만난 결승 매치업은 화제 그 자체였다. 메이저리그(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일본이 4강에서 멕시코를 꺾자 '우리 모두가 이 게임이 시작됐을 때부터 기대했던 결승전을 보게 됐다'고 들떠했다. 미국이 쿠바를 제압하고 결승에 선착해 있는 상황에서 매치업의 주인공이 일본으로 결정되자 현지 언론도 관련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과정에서 WBC 조직위원회가 인위적으로 경기 일정을 바꿨다는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미국이 C조 1위가 아닌 2위(3승 1패)로 8강에 오르자 원래 일본과 4강에서 만날 수밖에 없던 대진을 바꿔 결승 매치업이 가능하게 수정한 것이다. 그만큼 일본과 미국의 결승전은 흥행을 보장하는 빅매치였다.
결승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한 미국 선수들의 연봉 총액은 2억 달러(2616억원)를 상회했다. 파죽지세로 결승에 오른 일본이지만 론디포 파크를 찾은 3만6000여 팬들이 대부분 홈팀 미국을 응원했다. 일본은 2회 초 선발 이마나가 쇼타(요코하마 베이스타스)가 트레이 터너(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선제 솔로 홈런까지 허용했다. 터너는 이 홈런으로 2006년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WBC 단일 대회 최다 홈런 타이기록(5개)을 세웠다. MLB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터너 홈런 직후 미국의 승리 확률은 47.7%에서 58.8%로 상승했다.
일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회 말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 스왈로스)가 동점 솔로 홈런을 터트렸다. 1사 만루에선 라스 눗바(세인트루이스)의 1루 땅볼로 역전에 성공했다. 경기 초반 굳어있던 분위기가 금세 풀렸다.
일본은 4회 말 오카모토 가즈마(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3회부터 가동된 불펜은 7회까지 4명의 투수가 무실점을 기록했다. 8회 등판한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카일 슈와버(필라델피아)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1점 차로 쫓겼으나, 역전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날 경기의 백미는 9회 초였다. 구리야마 감독은 마무리 투수로 '이도류' 오타니를 마운드에 세웠다. 첫 타자 제프 맥닐(뉴욕 메츠)을 볼넷으로 내보낸 오타니는 후속 베츠를 2루수 병살타로 잡아냈다. 이어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트라웃을 상대했다. 트라웃은 이날 미국 선수 중 최고 몸값(연봉 485억원)을 자랑하는 MLB 슈퍼스타이자 오타니의 에인절스 팀 동료. 사실상 일본과 미국 야구를 대표하는 아이콘간의 맞대결이었다. MLB닷컴은 '전 세계가 기다리던 순간'이라고 조명했다.
모든 야구 선수들이 동경하는 트라웃을 오타니가 잡아냈다. 100마일 강속구(160.9㎞/h)로 풀카운트를 만든 오타니는 87.2마일(140.3㎞/h)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오직 이기는 것만 생각하자"고 강조했던 오타니는 글러브를 던지며 환호했다.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그의 몫이었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일본은 충분히 우승할만한 전력이었다. 그만큼 흠이 없었다"며 "오타니나 다르빗슈가 팀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걸 (대회 기간) 계속 보여주더라. 특히 오타니는 본인의 스타일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이번 대회에선 더그아웃에서도 그렇고 주자로 나갔을 때 분위기를 띄우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투수진도 진화했다. 구속은 구속대로 빨라지고 무브먼트까지 뛰어났다. (대회 1라운드에 탈락한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경기를 보는 내내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