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고양 캐롯 점퍼스 창단식에서 허재 대표이사가 김승기 감독과 코치진, 선수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양=김민규 기자 프로농구 고양 캐롯 점퍼스의 ‘촌극’이 시즌 마지막까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캐롯 탓에 봄 농구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어 농구계 근심이 커지고 있다.
캐롯을 운영하는 데이원스포츠는 지난 21일 “캐롯손해보험과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종료했다. 구단 명칭은 고양 데이원 점퍼스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캐롯은 시즌 내내 부정적인 이슈가 이어지자 계약 1년도 채 전에 종료를 요구했고, 데이원도 결국 구단명에서 ‘캐롯’을 빼기로 했다.
다만 일방적인 발표만으로는 구단명이 바뀌지 않는다. 당장 발표 다음날인 22일 경기 역시 고양 캐롯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를 치렀다. 팀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이사회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팀명을 바꾼다고 발표했다. 이사회 일정을 고려하면 스폰서 계약이 종료된 뒤에도 ‘캐롯’이라는 간판으로 경기를 치러야 할 판이다.
팀명을 바꿔야 할 정도의 촌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프로농구 최초로 네이밍 스폰서십을 운영하며 출범했지만, KBL 가입금 격인 특별회비를 제때 납부하지 못하면서 시즌 전부터 도마 위에 올랐다. 모기업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그 여파가 농구단까지 이어진 것이다. 결국 KBL은 긴급 이사회를 열고 캐롯이 15억원을 두 차례에 나누어 내도록 했다. 캐롯은 지난해 10월에야 1차분 5억원을 가까스로 납부했다.
올해 들어서는 선수단과 사무국 직원들의 급여마저 밀리는 등 잡음이 일었다. 1월과 2월에 이어 이달에도 급여를 제때 받지 못했다. 모기업 대우조선해양건설과 데이원의 무책임에 대한 피해가 고스란히 선수단에게 향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캐롯은 PO 진출권을 따냈다. 급여를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코트 안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해 뛰었고, 팬들도 뜨거운 박수로 응원했다. 그런데 정작 PO 무대에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남은 특별회비 10억원을 아직도 내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8월 고양 캐롯 점퍼스 창단식에서 구단기를 흔들고 있는 허재 대표이사. 고양=김민규 기자 KBL이 정한 2차 특별회비 납부 기한은 31일 오후 6시다. 만약 이날까지 납부하지 못하면 캐롯의 PO 진출권은 박탈당하고, PO 진출권은 7위 팀에 돌아간다. 캐롯 선수들은 시즌 내내 최선을 다해 PO 진출권을 얻고도 정작 뛰지는 못하고, 정규리그 7위 팀은 어부지리로 PO에 나선다. 3위와 6위, 4위와 5위가 각각 맞대결을 펼치는 PO 대진도 모두 꼬인다. 프로농구 전체가 흔들린다.
문제는 모기업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농구단 지원길이 막히면서, 10억원의 가입금을 기한 내에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기한에 맞춰 이를 납부해 PO에 출전하겠다는 게 데이원 측의 계획이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농구계 관계자들은 많지 않다.
더구나 프로농구 정규리그는 29일 막을 내린 뒤 31일 PO 미디어데이가 열릴 예정이다. 31일 오후 6시 납부 기한까지 캐롯이 10억원을 납부할지 여부가 미정인 상황에서 PO 미디어데이가 열릴 수도 있는 셈이다. KBL 관계자는 “캐롯이 남은 가입금을 납부하지 못한다는 걸 전제할 수는 없으니, 원칙대로 캐롯이 참가하는 미디어데이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김승기 감독과 캐롯 대표 선수는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PO 무대에 대한 출사표를 밝힌 뒤, 오후 6시가 지나 출전권이 박탈되는 또 다른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정규리그 7위에 오른 팀은 미디어데이에 참석하지도 못한 채 캐롯의 사태를 주시하다 다음 달 2일 갑작스레 PO 무대에 나설 수도 있다. 진정한 챔피언을 가리는 무대에 캐롯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