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판타지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이하 ‘던전 앤 드래곤’)가 오는 29일 개봉한다. ‘던전 앤 드래곤’은 오래전 사라진 유물을 차지하기 위해 한 팀이 된 도적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모험을 펼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음유시인이자 비밀결사 ‘하퍼즈’ 소속인 에드긴(크리스 파인)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긍지를 버리고 좀도둑으로 살아간다. 에드긴은 하퍼즈에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보물 부활의 서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바리안 여전사 홀가(미셸 로드리게스), 소서러(마법사) 사이먼(저스티스 스미스), 사기꾼 포지(휴 그랜트) 등과 비밀 기지를 털다가 그만 붙잡히고 만다.
사랑하는 딸 키라(클로이 콜먼)를 동료 포지에게 맡긴 에드긴은 홀가와 악명높은 감옥에서 2년을 버틴다. 기발한 재치로 감옥에서 탈옥해 키라를 찾아 나선 에드긴은 포지의 계략에 말려들어 딸과 아내를 되살리는 보물 모두 빼앗겼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에 새로운 동료를 모아 난공불락의 요새 포지의 성을 털 계획을 세운다.
이 영화는 동명의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이하 D&D)을 원작으로 한다. D&D는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1970~80년대 미국 초등학생 사이에서 대유행한 게임 시리즈다.
현재까지 4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게임인 만큼, 세계관과 설정이 방대하고 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영화 ‘던전 앤 드래곤’에서는 이러한 배경지식 하나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진입장벽을 제대로 낮출 수 있던 이유는 정해진 스토리가 없는 D&D의 플레이 방식 때문이다.
D&D는 일종의 보드게임으로, 테이블에 둘러 앉아 각자 역할(role)에 맞춰 게임하는 ‘테이블톱 롤 플레잉 게임(TRPG)’이다. 일정한 세계관과 특성에 기반해 상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플레이한다.
게임의 진행자 ‘던전 마스터’가 이야기의 배경을 설명하면, 플레이어들은 바바리안(전사), 마법사, 도적, 성직자 등 직업을 선택하고 합심해 시련을 돌파해나간다. 예를 들어 던전 마스터가 강한 괴물을 등장시키면, 플레이어들은 캐릭터의 능력으로 물리치거나 주변 환경을 파악해 도망치는 등 다양한 플레이를 선택할 수 있다. 일정한 세계관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며’ 진행하는 방식이다보니, 영화 ‘던전 앤 드래곤’은 이야기의 배경과 캐릭터만 가져왔을 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스크린에 쓸 수 있었다.
다만 D&D 게임이 상상으로 이야기를 만든다고 해서 ‘투명 드래곤이 나타나 모든 시련을 해결했다’는 식의 진행은 할 수 없다. 엄연히 D&D에는 일정한 규칙과 세계관이 존재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첫 시작 장면에서 D&D를 플레이하는 청소년들이 강력한 빌런 ‘데모고르곤’에 불덩어리로 공격할지, 방어마법을 쓸지 고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D&D를 플레이하는 자리에는 두꺼운 설정집이 함께 놓이는 것이 일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D&D와 비슷한 TRPG게임이 유행한 바 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유행한 ‘공책게임’이다. 공책 속에 아이템, 지도 등을 그려 넣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임으로, 체계적인 규칙보다는 공책 주인이 곧 법인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