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우상의 등만 바라보고 뛰어왔던 어린 선수의 등 뒤에 이젠 그 우상이 서 있다. 어렸을 적 우상과 한 그라운드에서 뛰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롤모델이 자신의 뒤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린 선수는 매 순간이 감동이었다.
KT 위즈 투수 손동현(22)은 인터뷰 도중 떨리는 손으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어렸을 적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있는 김상수(33)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손동현은 “당시 ‘삼린이(삼성팬 어린이)’이자 팀에서 내야수였던 나는 (김)상수 형이 롤모델이었다. 야구 게임 아이디도 상수 형과 관련된 이름일 정도로 ‘찐팬’이었다”라면서 “목동에서 상수 형을 봤을 때 벅찬 마음에 뛰어가 사인과 사진 요청을 했는데 흔쾌히 받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보니 더 멋있었고, 그날을 계기로 상수 형 같은 선수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꿈만 같았던 우상과의 만남.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이젠 한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는 선후배 사이가 됐다. 손동현은 “상수 형이 삼성에 있었을 때 투수와 타자로 맞대결을 펼쳤던 기억이 있다.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꿈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은 있다”라면서 “그랬던 상수 형이 이젠 (유격수로서) 내 뒤에 있다. 경기 내내 뒤에서 따뜻한 말을 건네주시면서 격려하는 형의 모습이 아직 어색하지만 든든했고, 가끔 아직도 꿈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수 형과 함께해서 정말 기쁘다”라며 활짝 웃었다.
손동현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내야수 강민성(24)도 어렸을 적 김상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대구에서 자란 강민성도 초등학생 시절 대구 시민야구장 앞에서 김상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후 프로에서 우상과 한솥밥을 먹게 된 그는 김상수에게 먼저 다가가 어렸을 적 사진을 보여줬다. "기억나십니까"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강민성은 “어렸을 때 상수 형만 보면서 컸는데 KT에서 함께 하게 돼 너무 신기했다. 스프링캠프에서 함께 훈련했는데 정말 설렜고 너무 좋았다"라면서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선배고, 나도 상수 형같은 선수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라고 여러 번 말했다.
김상수는 이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김상수는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연쇄사인마’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팬에게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는 그가 모든 사람을 기억할 순 없었다. 손동현과 강민성도 마찬가지. 두 선수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받은 김상수는 “내가 사진을 이렇게나 많이 찍었구나”라고 껄껄 웃었다. 그는 “사진을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기분이 색다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김상수는 “내가 이승엽(47·두산 베어스 감독) 선배를 동경하면서 커왔던 모습과 같다”고 했다. 손동현과 강민성처럼, 그도 초등학생 시절 당시 삼성 선수였던 이승엽 감독과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그는 “어렸을 때 나도 이승엽 선배를 바라보며 선수의 꿈을 키웠다. 이젠 내가 이승엽 선배의 입장이 된 게 아닌가”라면서 “이 친구들과 함께 뛰고 있는 만큼, 경기장에서나 밖에서나 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생긴다”라고 말했다.
감회에 젖은 그는 “이렇게 프로에서 함께 뛰는 것이 후배들에게 영광이겠지만, 나도 영광이다. 나도 이승엽 선배를 따라간 것처럼, 후배들도 누군가의 우상이 돼서 사진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다”라면서 “경기장에서나 밖에서나 팬들과 함께 잘 어우러져 열심히 뛴다면 기회는 충분히 온다.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멋진 선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