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에도 마운드를 든든히 지키는 투수가 있다. 5경기 5이닝 1피안타 11탈삼진 무실점. 고효준(40·SSG 랜더스)이 올 시즌 시범경기에서 무실점 완벽투를 선보이며 새 시즌 기대를 높이고 있다.
고효준이 시범경기 기간 내준 안타는 단 1개. 첫 등판이었던 3월 13일 대구 삼성전에서 첫 타자 강한울에게 우전 안타를 내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피안타였다. 이후 상대한 모든 타자를 범타 처리했다. 사사구는 단 1개도 없었고, 삼진을 11개나 잡아내는 완벽한 투구를 펼치며 팀의 허리를 책임졌다.
지난 2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시범경기에선 삼진 2개를 잡아내면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외국인 타자 오스틴 딘과 오지환을 연달아 삼진 처리했다. 오스틴과의 맞대결에선 최고 145㎞/h의 빠른 공을 던졌고, 130㎞/h대 초반의 변화구로 타이밍을 뺏었다. 완벽투를 선보인 고효준은 이날 경기 승리투수가 되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고효준이 시범경기 승리투수가 된 건 2009년 이후 14년 만이다.
1983년 2월생인 고효준은 2023시즌 한국프로야구 KBO리그 투수들 중에서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선수다. 어느덧 은퇴를 바라볼 나이. 하지만 고효준은 멈출 생각이 없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피나는 노력으로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그는 마운드에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다.
사실 고효준은 재작년 은퇴 위기에 빠진 적이 있다. 2020시즌 종료 뒤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고효준은 2021년 3월 1일에 LG 트윈스와 계약했지만, 그해 말 재계약에 실패하며 다시 무직 신세가 됐다. 당시 불혹을 앞에 둔 그의 미래는 불투명했고, 은퇴도 고려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효준은 포기하지 않고 개인 훈련에 매진하며 현역 연장의 꿈을 이어갔다. 그리고 고효준은 이듬해 1월 입단테스트를 통해 친정팀에 복귀, 그해 45경기에서 1승 무패 7홀드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해 방출생 신분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던 고효준은 올해는 팀내 최고참 베테랑 투수로서 새 시즌을 맞이한다. 연봉도 4000만원에서 2배 이상 인상된 8500만원에 재계약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고효준은 자신을 더 채찍질하며 더 완벽하게 시즌을 준비했다. 불혹의 나이에도 145㎞/h의 빠른 공을 던졌고, 5경기 동안 16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사사구 없이 11명을 삼진 처리하는 노련미를 선보이며 시범경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새 시즌 활약이 기대가 되는 성적이다.
고효준이 2023시즌 SSG의 마운드를 밟는다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프로 22년차 시즌을 맞는 고효준은 투수로 21년을 뛴 송진우(57·전 한화)와 류택현(52·전 LG) 김원형(51·전 SSG)의 기록을 뛰어넘는다. KBO 연감에 새겨지지는 않는 기록이지만 꾸준함의 대명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들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페이스라면 진기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