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KFA)가 31일 오후 4시 임시 이사회를 개최한다. 제2차 이사회가 열린 지 불과 사흘 만이다. 안건은 축구계를 넘어 국민적인 공분을 사고 있는 승부조작 가담자 48명 등 100명에 대한 사면 건이다. 정몽규 회장을 필두로 다시 모여 사실상 기습적으로 의결됐던 사면건을 다시 논의하는 것이다.
이미 이사회를 통해 의결됐고, 기습적이지만 대대적인 공식발표까지 이뤄진 사안을 사흘 만에 다시 논의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월드컵 16강 자축, 축구계 화합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내세워 단행했던 축구인 100명에 대한 사면이 그만큼 구상과 시도 자체만으로도 촌극이었다는 의미다.
국가대표 출신 등 내로라하는 축구인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지만, 다행히 축구팬이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KFA의 비상식적인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승부조작 사태로 너무도 큰 상처를 안았던 K리그 팬들은 이미 걸개 등을 통해 KFA를 향해 비판 메시지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악마도 A매치 보이콧 등을 내걸며 사면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시간이 갈수록 KFA를 향한 비난 여론이 축구팬들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공분으로 확대되는 모습은 KFA의 이번 결정이 얼마나 상식을 벗어났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들끓는 분노에 화들짝 놀랐을 KFA는 결국 임시 이사회 개최 소식을 알렸다. 전날만 하더라도 홈페이지에 사면에 대한 Q&A 콘텐츠까지 올리며 징계인들의 사면에 적극적이었으나 하루 만에 태도가 확 바뀌었다. KFA 측은 “이번 결의에 대해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신속하 재논의를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결된 사안을 사흘 만에 재논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분위기는 우선 ‘사면 철회’ 가능성에 기우는 모습이다. 다만 사면 대상이었던 100명에 대한 사면이 전면 철회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승부조작 48명에 대한 사면은 철회하되, 승부조작에 가려졌던 52명에 대한 사면은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52명은 아마추어 등에서 징계를 받았던, 이름을 봐도 모를 만한 축구인들이라는 게 KFA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다만 100명이 누구인지,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관계자의 설명을 100% 신뢰할 수만은 없는 만큼, 승부조작 가담자를 제외한 나머지 52명이 누군지, 무슨 이유로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셈이다.
문제는 이번 논란 내내 KFA ‘왜’, 그것도 14년 만에 갑작스럽게 사면을 단행했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드컵 16강 자축이나 축구계 화합은 누구나 코웃음을 칠 연관성이다. 100명의 사면 대상자,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48명뿐만 아니라 그들에 가려졌던 나머지 52명 안에 기습적으로 사면을 단행해야 했던 인물이나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건 정황상 합리적인 의심이다.
임시 이사회를 통한 재논의에도 100인에 대한 사면 결정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논란은 더욱 거세지는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여기에 승부조작 가담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52명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반쪽짜리’ 사면 역시도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KFA가 스스로 만든 사면 논란의 불을 끄는 건, 이번 사면 결정에 대한 전면 철회와 함께 정몽규 회장의 공식적인 사과와 해명이 유일한 길이다.
사면 전면 철회와 함께 ‘사면권의 발의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고유권한’이라고 명시된 KFA 공정위원회 규정도 개정이 필요하다. KFA의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는 산하단체에 관련 규정을 따르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는 ‘사면’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수사기관의 불기소 결정·법원의 무죄판결 확정에 한해 당사자가 직접 구제 신청을 해야 징계 감경·취소 등이 가능하다. 지극히 상식적인 규정이다.
KFA는 그러나 체육회의 권고를 무시한 채 2020년 9월 개정을 끝으로 공정위원회 규정을 손보지 않고 있다. 이 사이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은 다섯 차례나 더 개정됐다. 승부조작 등 이미 징계를 받은 이들에게 직접 면죄부를 주려 했던 KFA의 사면권도, 고유권한도 애초에 시대를 역행한 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