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전은 변수가 시리즈 흐름을 바꾼다. 예상하지 못한 선수의 활약이 승패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2022~23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챔프전·5전 3승제)에서도 그랬다. 정규리그 1위 흥국생명이 1·2차전을 모두 잡으며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신인 선수의 서브에 고전하며 3차전을 내줬다.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 이예은(19)이 그 주인공이다.
도로공사는 2일 홈 코트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챔프전 3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3-1(22-25, 25-21, 25-22, 25-20)로 승리했다. '클러치 박' 박정아가 24득점·공격 성공률 38.18%를 기록하며 활약했고, 외국인 선수 캣벨도 21득점·공격 성공률 35.19%를 기록하며 박정아를 지원했다. 베테랑 미들 블로커(센터) 배유나는 고비마다 속공과 블로킹 득점을 해냈다. 1·2차전에서 패한 도로공사가 3차전을 잡고 반격했다.. 챔프전 향방은 안갯속이다.
이 경기 흐름은 신인 선수 이예은의 손에서 갈렸다. 포스트시즌 '원 포인트 서버'로 나서 존재감을 보여준 그는 2세트 20-20에서 '배구 여제' 김연경을 향해 목적타를 보내 리시브를 흔들고 득점을 끌어냈다.
도로공사는 이예은의 서브 순번에서 연속 4득점 하며 승기를 잡았고, 세트 포인트(24-21)에서 박정아가 퀵오픈 득점을 해내며 세트 스코어 1-1 동점을 만들었다.
이예은은 3세트도 20-21 상황에서 나서 김미연의 리시브를 흔들었다. 22-21에서는 김미연을 향해 서브를 구사, 다시 한번 에이스를 해냈다. 도로공사는 3세트를 25-22로 잡았고, 4세트도 박빙 승부 끝에 먼저 25번째 득점을 해내며 2패 뒤 1승을 따냈다.
경기 뒤 만난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똘끼가 있는 선수를 좋아하는 편"이라며 3차전 '게임 체인저' 임무를 해낸 이예은의 배포를 치켜세웠다. 수훈 선수 인터뷰를 가진 도로공사 주축 선수 박정아는 "(이)예은이 별명이 금쪽이다. 때로는 은쪽이나 동쪽일 때도 있다"며 특유의 개성을 귀띔했다. 배유나도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고 했다.
선배들은 중요한 경기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제 몫을 다한 '막내'를 칭찬한 것. 박정아와 배유나 모두 "감독님이나 코트 안 선수들이 바라는 작전을 잘 수행했다. 신인 선수지만 그런 면모로 중요한 경기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예은은 "긴장되지 않았다"고 해맑게 웃었다. 이유는 코트에 들어가면 선배들이 반기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지시받은 대로 특정 선수에게 목적타를 보내면 그만이었다. 이예은은 "언니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싶었다. 경기 중에는 서브 에이스를 해낸 게 실감 나지 않았지만, 끝난 뒤엔 '포인트를 냈구나' 싶었다"고 웃어 보였다.
사령탑의 말처럼 똘끼가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인정한다"고 했다. 장난기 섞인 말투에 솔직한 메시지. 영락없는 요즘 세대였다.
도로공사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5차전이 열리는 인천까지 가야 한다. 박정아·배유나 두 선배는 "한 경기, 한 포인트에 집중하겠다"는 각오를 전했지만, 이예은은 "인천으로 가자"라고 크게 외쳐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응원했던 언니(박정아·배유나)들과 함께 뛰는 앉아 있는 것만으로 꿈같다"며 다시 배시시 웃었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도 이예은의 서브를 막지 못한 점을 언급하며 이 경기 패인으로 삼았다. 기세가 오른 신예 이예은이 시리즈 흐름을 어떻게 바꿀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