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이 챔피언 결정전(챔프전·5전 3승제)에서 아름다운 패자로 남았다.
현대캐피탈은 3일 천안 유관순 체육관에서 열린 2022~23 도드람 V리그 남자부 대한항공과의 챔프전 3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2-3(25-23, 25-13, 22-25, 17-25, 11-15)으로 패했다. 2세트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하지만 3~5세트에서 홀린 것처럼 무너졌다. 현대캐피탈은 시리즈 전적 무승 3패로 이번 챔프전을 마쳤다.
홈팬들의 함성 속에 나선 코트.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힘을 냈다. 초반부터 경쾌한 움직임과 자신감 넘치는 스파이크를 보여줬다. 특히 리베로 박경민이 불어 넣은 활력이 1세트 내내 힘을 준 것 같다. 그는 코트 경계선 펜스를 넘어 사진 기자들이 촬영하는 위치까지 날아간 공을 구조물과 충돌하면서 걷어냈다. 이후 바로 코트 위로 뛰어나가는 투지를 보여줬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이후 더 힘 있는 플레이를 보여줬다.
대한항공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현대캐피탈이 달아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19-19에서 미들 블로커(센터) 박상하가 곽승석의 퀵오픈을 블로킹하며 먼저 20점 고지를 밟았고, 22-22 박빙에서도 오레올이 오픈 공격을 득점으로 만들며 앞서갔다. 1세트 내내 상대 외국인 선수 링컨 윌리엄스의 '쳐내기' 공격에 실점했는데 이어진 상황에서는 링컨이 현대캐피탈 코트로 그냥 넘기려는 공을 오레올이 바로 때려 상대 코트에 꽂아 득점했다. 24-22로 앞선 현대캐피탈은 무난히 남은 1점을 채웠다.
기세를 탄 현대캐피탈은 2세트도 밀어붙였다. 5-5에서 허수봉이 세터 김명관과의 완벽한 호흡으로 파이프(백어택 공격)를 성공시켰고, 상대 포히트 범실로 1점 더 달아났다. 이날 선발 투입된 김선호가 스파이크 서브에 성공하며 불붙은 기세에 바람을 불어넣었고, 오레올이 상대 주포 정지석의 퀵오픈을 가로막으며 이 경기 최다 점수 차(스코어 10-5)를 만들었다.
현대캐피탈은 상승세에 심취하지 않고 꾸준히 득점을 올렸다. 허수봉은 17-10에서 서브 에이스를 해내며 현대캐피탈이 이 경기 승기를 잡는 데 기여했다. 대한항공은 한선수 등 주전 선수들을 빼고, 다음 세트를 준비했다. 현대캐피탈이 무려 12점 차로 2세트를 잡았다.
3세트는 밀렸다. 5-6에서 정지석에게 연속 서브 에이스 2개를 허용하며 기세를 내줬다. 꾸준히 추격하며 사정권을 지켰고, 20점 진입을 앞두고 허수봉이 정지석의 퀵오픈을 블로킹하며 다시 분위기를 바꿨다. 허수봉은 18-19에서 오레올과 김명관이 간신히 살려낸 공을 백어택 라인 뒤에서 날아올라 득점하며 기어코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링컨의 대각 오픈 공격을 막지 못해 결국 한 세트를 내줬다.
저력을 드러낸 대한항공에 4세트도 빌렸다. 리시브가 흔들리며 연속 6득점 했고, 공격 범실까지 나오며 0-7로 밀렸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도 상대가 10점대에 진입한 뒤 주전들을 빼고 5세트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독이 됐다. 연속 두 세트(3·4)를 내주며 상대에 기세를 내줬고, 주축 선수들은 5세트 초반 몸이 굳은 모습을 보였다. 허수봉이 연속으로 블로킹을 당하며 기세 싸움에서 밀렸다. 뒤늦게 발동이 걸렸지만, 이미 점수 차는 크게 벌어진 뒤였다. 결국 장거리 달리기에서 초반에 너무 힘을 뺀 게 부메랑이 됐다.
수많은 전술 변화로 전력이 앞선 팀(대한항공)을 넘어보려고 했단 최태웅 감독과 현대캐피탈 선수들. 주포 전광인의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이겨내야 했다. 1승도 거두지 못한 시리즈 전적으로 현대캐피탈의 투지를 판단하긴 어렵다. 대한항공의 사상 첫 트레블과 3연속 통합 우승의 제물이 됐지만, 선수들은 조연으로 봄 배구를 달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