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결정전 MVP 한선수. 사진=KOVO 세터는 코트 위의 사령관으로 불린다. 공격 배분, 패턴 플레이, 완급 조절 등 벤치의 의도를 실제로 구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세터의 역량은 팀 전력 차이를 만든다. 왕조 시대를 연 대한항공엔 한선수(38)가 있었다.
2022~23 도드람 V리그 남자부 왕좌에 오른 팀이 결정됐다. 3일 천안 유관순 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챔프전·5전 3승제) 3차전에서 대한항공이 현대캐피탈에 세트 스코어 3-2로 승리하며 시리즈 3승(무패)째를 챙겼다. 정규리그에 이어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3년 연속이다. 지난해 8월 열린 KOVO컵까지 제패한 대한항공은 창단 처음으로 트레블(정규리그·챔프전·KOVO 우승)까지 달성했다.
우승 주역은 단연 한선수다. 링컨 윌리엄스-정지석-곽승석 '공격 삼각편대' 화력, 김규민·조재영을 활용한 속공과 이동 공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경기 운영을 보여줬다. 특유의 플로터 서브로 상대 리시브를 흔들기도 했다. 절묘한 토스 컨트롤로 상대 블로커를 따돌리는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점수를 올릴 수 있는 모든 루트를 활용하는 세터였다.
세터의 존재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험이 적은 세터일수록 박빙 상황에서 확실한 득점 루트, 즉 주포를 활용한 측면 공격에 집중한다. 결과를 떠나 상대 블로커는 어렵지 않게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한선수와 다른 세터와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위기에서 중앙 또는 이동 공격을 잘 활용한다. 야구에서 투수가 바깥쪽 변화구를 보여주고, 몸쪽 빠른 공을 찔러 넣는 것처럼 미들 블로커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상대 수비에게 준 뒤 측면을 이용한다.
대한항공은 KB손해보험과의 4라운드 6차전부터 5라운드 1~3차전 모두 패했다. 시즌 첫 4연패였다. 이 기간 2위 현대캐피탈에 추격을 허용하기도 했다.
한선수가 코로나 이슈로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했던 때와 겹친다. 2월 14일 KB손해보험, 17일 우리카드전에서는 교체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선수는 현대캐피탈에 시즌 처음으로 1위를 내준 뒤 나선 22일 OK금융그룹전에서 다시 선발로 복귀, 완벽한 경기 운영을 보여줬다. 링컨과 정지석 모두 공격 성공률 60% 이상 기록했다. 이 경기를 셧아웃으로 잡은 대한항공은 다시 선두로 올라섰고, 상승세를 타며 시즌 34번째 경기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한선수는 챔프전에서도 팀 선수들이 능력을 극대화했다. 상대가 기세가 올랐을 땐 어김없이 득점을 끌어내는 경기 운영을 보여줬다. 팀을 정상으로 이끈 그는 기자단 투표 31표 중 23표를 받아 팀 동료 링컨(7표)을 제치고 챔프전 MVP에 올랐다.
우승 트로피를 받으며 눈물을 보인 한선수는 "1년, 1년 다르게 와 닿는 것 같다. 나이가 먹은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MVP 수상에 대해서는 "젊을 때는 상을 받고 싶었다. 지금은 그저 코트에서 뛰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우승보다 더 좋은 게 없지 않은가. 상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즌을 치르진 않는다"라고 했다.
목표는 생겼다. 대한항공은 삼성화재에 이어 남자부 두 번째로 통합 3연패와 트레블을 달성했다. 한선수는 최초 기록을 노린다. 그는 "아직 한 번도 해내지 못했던 4연속 통합 우승을 해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선수의 배구 인생 계획은 마흔두 살까지 선수로 뛰는 것. 현재 그는 서른여덟 살이다. 그는 "그때까지 버티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4연패를 넘어 5연패, 6연패를 노리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한선수가 역대 최고 세터로 우뚝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