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의 올해 고민은 역시 ‘불펜진’이다. 마무리 오승환(41)과 셋업맨 우규민(38)이 뒷문을 책임지는 가운데, 선발에서 셋업맨까지 가는 ‘허리’ 라인이 부족해 그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올시즌 초부터 필승조로서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프로 13년차 투수, 우완투수 이승현(32)이다.
이승현은 지난 2일 대구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 4회 초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당시 삼성은 선발 앤드류 수아레즈가 3이닝 6실점으로 조기강판되면서 1-6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전날 개막전 0-8 대패에 이어 패색이 짙은 가운데 이승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이승현이 마운드를 안정시킨 사이 타선이 힘을 냈다. 4회 말 3-6까지 따라간 삼성은 6회 말 강민호의 3점포로 동점에 성공, 이후 2점을 더 뽑아내면서 8-6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이승현이 마운드의 중심을 잡아주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덕분이었다.
삼성 우완투수 이승현. 삼성 제공
이승현은 그동안 잠재력이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2019년 34경기에 나서 2승 1패 8홀드 평균자책점 1.95를 기록한 이후, 2020년 14홀드, 2022년 13홀드를 올렸다. 그러나 투구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필승조로 분류되기엔 모호한 위치에 있었다.
시범경기 기간 중 만난 이승현은 “요새 구속이 빠른 선수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나도 조급해지더라”며 부진 이유를 설명했다. 구속 욕심이 있었다는 고백이다. 그는 “사실 내 (구속) 데이터는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크게 나빠진 건 없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커맨드(제구)가 나빠졌다. 구위가 좋아졌어도 제구가 안 되니 공이 가운데로 몰렸고, 맞아 나갔다. 그 뒤에는 멘털이 흔들리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라고 회상했다.
계속되는 부진에 이승현은 준비 방식을 바꿨다. 유연성을 강화하는 웨이트 훈련을 실시했다. 어색한 시도에 불안감도 있었지만, 지난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보면서 확신을 가지고 더 구슬땀을 흘렸다. 강팀 투수들이 안정적인 밸런스와 유연성을 바탕으로 실투 없이 강속구를 던지는 모습을 보고 새 훈련 방식에 확신을 가졌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시범경기 4경기에서 1홀드 2세이브 4이닝 무실점 완벽투를 펼친 이승현은 정규시즌에서도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가며 팀의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이젠 어엿한 삼성의 필승조로 분류됐다.
이승현은 “연차는 많이 됐지만 아직 내 자리가 확실히 없다. 1군 필승조 자리에 욕심이 난다”라면서 “지금까진 잘되고 있다. 올해는 후반기까지 이 페이스가 이어지면 좋겠다"며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