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할 말만 하고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딸. 뭐라고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서 성큼성큼 따라가 방문을 열었더니 “문 큰소리로 닫아서 미안해”라며 태연하게 웃어 보인다. 뭐라고 하기 머쓱해져서 괜히 다른 말로 변죽을 올리다 돌아서는 부모의 마음. ‘길복순’에서 복순(전도연)이 당돌한 딸 재영(김시아)에게 꼼짝 못 하고 돌아서는 이 장면, 자식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것이다.
톱스타 전도연에게도 이런 순간은 있었다. 전도연은 5일 오후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공개에 맞춰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나라고 왜 그런 경험이 없겠느냐”며 웃어보였다.
“문 쾅 닫고 들어가는 그런 거, 당연히 저도 그런 일 겪었죠. 당해본 적도 있고, 어렸을 땐 제가 해보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장면 아닐까요.”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전도연)이 회사와 재계약 직전, 죽거나 또는 죽이거나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전도연은 이 작품에서 킬러이자 10대에 접어든 딸을 키우는 싱글맘인 길복순을 연기했다.
“살인은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이라는 대사는 킬러로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 복순의 심정을 잘 표현한다. 사람을 길러내는 엄마와 사람을 죽이는 킬러라는 선명한 대비는 작품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하는 포인트다. 더불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고된 일인지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알았어요. 한 사람을 키워낸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요. 저도 완벽하지 않은 그냥 사람이잖아요. 그런 부족한 제가 아이에게 어떤 게 올바른 일인지를 가르치면서 키운다는 게 여전히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어떨 때는 아이들이 엄마보다 현명할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직업이 킬러인 복순은 여러 번의 살인을 한다. 그 가운데는 무찌르기 어려운 상대도 있고, 여러 명을 한 번에 상대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보다 복순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건 자신의 진짜 직업을 딸이 아는 것이었다. 전도연은 “내 딸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게 복순의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킬러라는 직업 자체는 판타지적이지만 어쨌든 영화 안에서 복순에게 살인은 낯선 일은 아니잖아요. 자기 일이니까 당연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아이한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만한 일은 아니죠. 딸이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많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칸의 여왕’이라 불리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스타지만, 인간 전도연에게도 당연히 자식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면이 있다. 아무리 허물없는 게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는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는 복순이처럼 떳떳하지 않은 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딸이 이것까진 몰랐으면 좋겠다’는 부분도 당연히 있죠. 정확히 어떤 건지 꼬집어서 말하라고 하면 말하긴 어렵겠지만요. (웃음) 가까울수록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들 하고 그 말이 일견 맞기도 하지만,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사생활과 비밀은 필요하다고 봐요.”
그렇다면 영화에서 가장 궁금했던 한 가지. 재영이의 아빠는 누구였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 어떤 정보도 공개되지 않은 재영이 아빠에 대한 질문을 전도연 역시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답은 ‘전도연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빠가 차민규(설경구)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죠. 저도 그래서 감독님께 여쭤봤거든요. 그런데 감독님 답은 ‘차민규는 아니다’였어요. 그 외엔 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