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35·SSG 랜더스)은 지난 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3이닝을 투구, 데뷔 후 한·미 통산 2000과 3분의 1이닝을 기록하게 됐다. 역대 한국인 투수들 중 한미일 통산 2000이닝을 달성한 건 김광현까지 단 10명뿐이다.
김광현의 2000이닝은 곧 그의 발자취다. 지난 2007년 SK 와이번스에서 데뷔해 77이닝을 소화했던 김광현은 이듬해 MVP(최우수선수) 수상을 시작으로 리그 에이스로 거듭났다. 이후 두 차례 부상은 겪었으나 그 외에는 한결같은 에이스로 인천의 마운드를 지켰다. 2021년과 2022년에는 메이저리그(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뛰기도 했다.
김광현을 지도하는 김원형 SSG 감독 역시 2000이닝 고지에 올랐던 10명의 투수 중 하나다.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데뷔한 그는 2010년 SK에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장장 20년 동안 마운드를 지키며 2171이닝을 소화하고 134승 144패를 기록했다.
많은 이들은 김광현의 화려함에 주목한다. MVP, 국가대표 에이스, 5차례 한국시리즈 우승과 3차례 헹가래 투수 등 김광현의 커리어는 강렬한 임팩트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김원형 감독이 보는 2000이닝의 가치는 꾸준함이다. 김 감독은 "한 시즌 경기 수가 늘어났으니 앞으로 2000이닝을 달성하는 선수는 더 많이 나올 것"이라면서도 "2000이닝을 던졌다는 건 꾸준하게 해왔다는 의미다. 그 자체가 굉장하다"고 김광현이 보여준 가치를 치켜세웠다.
김원형 감독 역시 20년 동안 쌓은 2171이닝에 사연이 많다. 김 감독은 "(신인이던) 1991년 우연히 복도에서 고 김영덕 빙그레 이글스 감독님과 마주쳤다. 감독님께서 내게 '앞으로 20년 할 생각으로 야구해라'고 하셨다"며 "그때 난 속으로 '15년을 채우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20년을 어떻게 하라는 걸까'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김 감독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20년을 하게 되더라. 그때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게 목표를 확고하게 해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원형 감독은 "철저한 몸 관리가 안 되면 20년을 뛸 수 없다. 나는 좀 미련할 정도였다. 야간 경기를 뛰면 일반적으로 새벽 2~3시에 잠이 든다. 그런데 난 등판 전날에는 경기 끝나자마자 11시에 자려고 했다"며 웃었다. 김 감독은 "당시 선배였던 조원우 수석 코치가 2005년 한화로 트레이드됐을 때도 그랬다. 절친한 관계니까 위로 차원에서 밥이라도 먹지 않나. 그런데 트레이드된 다음 날이 내 등판일이었다. 그래서 조 코치께 ‘미안합니다. 다음에 보시죠’라 하고 보냈다. 그때는 그럴 정도였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김원형 감독은 김광현 역시 그렇게 철저했다는 걸 안다. 김 감독은 "광현이는 어릴 때부터 몸 관리를 대충 한 적이 없다"며 "(김성근 감독 시절이라)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당시는 고참인 나, 조웅천, 가득염 등 고참들이 정말 열심히 했으니 후배들도 대충 할 수 없었다. 본인도 (잘하려는) 의식이 있으니 지금까지 계속 쌓여왔다"고 전했다.
17번째 시즌을 맞이한 김광현의 커리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지난해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투수상을 수상한 후 "지금 내가 35살이니까 40살까지 5년 남았다. 5년 안에 청라 돔구장이 지어져 그곳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꿈을 전한 바 있다. 김광현의 시간은 충분하다. 200승(한·미 160승), 2000탈삼진(한·미 1717개) 등 그가 이룰 역사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