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불펜진은 이승엽 감독이 개막 전까지 가장 많이 고민했던 문제였다. 지난해 신인왕 정철원과 마무리 홍건희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이 감독은 시범경기 막판 "8회(정철원)와 9회(홍건희)는 정해졌다. 그 앞에 이병헌, 박치국, 이형범, 김명신 같은 투수들이 막아줘야 한다"며 필승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가장 돋보이는 건 박치국이다. 지난해 단 15경기에만 등판해 평균자책점 5.40으로 부진했던 그는 올 시즌 6경기에서 1승 2홀드로 호투하고 있다. 아직 실점이 없는 '미스터 제로'다. 5회 이상 버텨준 선발진이 주춤할 때 박치국이 위기를 진화하고, 8회와 9회를 정철원과 홍건희가 마무리하는 식이다.
다만 아직 홍건희의 투구 내용이 불안하다. 홍건희는 12일 기준 시즌 3세이브째를 올렸으나 평균자책점이 5.06에 달한다. 구속이 문제다. 홍건희는 최고 시속 150㎞ 이상을 넘나드는 강속구 투수다. 직구 평균 구속이 2021년과 2022년 모두 시속 147.8㎞에 달했는데 올해는 시속 144.4㎞에 그치고 있다. 11일 경기에서도 동점 위기에서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를 잡고 진땀 세이브를 챙겼다.
이승엽 감독은 '믿음의 야구'로 버티고 있다. 필승조의 3연투를 자제하고, 보직도 바꾸지 않는다. 지난 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9회 말 6-6 상황에서 전날까지 연투했던 박치국·정철원·홍건희를 등판시키지 않아 화제가 됐다.
이승엽 감독은 "원칙은 불펜 투수들의 3연투를 줄이는 것이다"라며 "아직 시즌 초반이다. 120경기에서 130경기 정도를 소화한 시점이라면 한번 승부를 걸어봤을 수도 있다. 아직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다"라고 했다.
홍건희가 불안감을 노출해도 보직 변경은 없다. "현재 상황에서 홍건희가 8회에 나올 가능성은 없다. 무조건 세이브 상황에 나온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홍건희는 믿어볼 만한 투수다. 지난해에도 4월 평균자책점 5.65로 부진했으나, 후반기 평균자책점 2.28을 기록하고 시즌을 마감한 바 있다.
아직 선수층이 얇고 보직이 익숙하지 않은 두산 불펜에 적절한 전략이다. 시즌 초부터 필승조가 연투를 반복한다면 후반기에는 뒷문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 보직 고정도 중요하다. 홍건희는 지난해 마무리로 뛰었고, 정철원도 지난해 1군에 데뷔했다. 박치국 역시 개막전부터 중용된 건 오랜만이다. 자리 잡을 시간이 필요하다. 이승엽 감독의 인내와 믿음에 비례해 두산 불펜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