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화두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경기당 평균 시간을 줄이자는 것, 둘째는 지나치게 가라앉은 공격력을 끌어올리자는 거다. 개막 초반 경기당 평균 시간은 확연하게 줄어든 모습이다. 그렇다면 공격은 어떨까.
우선 공격이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해 경기당 득점이 지난 40년 사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50년 내 가장 낮은 OPS(출루율+장타율)가 기록됐다. 타율 역시 1968년 이후 최저를 기록, 투타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던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DH) 제도까지 도입했지만 별다른 공격 상승효과를 보지 못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득점을 올리는 다양한 루트가 실종됐다. 타자들이 홈런에 의존하는 큰 스윙에만 집중하니 전통적인 득점 요소들이 희미해졌다.
피치 클록의 가장 큰 목적은 경기 시간 단축이다. 그 이면에는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풀파워로 투구하는 걸 막아보자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 충분한 호흡과 여유를 갖고 투구하면 그만큼 투수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견제구 횟수를 제한하고 베이스 크기(15인치 정사각형→18인치 정사각형)를 키운 건 야구에서 기동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자는 아이디어다.
일단 경기 시간은 작년 기준(개막 일주일) 3시간 6분에서 2시간 27분으로 무려 29분이나 줄어들었다. 기동력도 눈에 띄게 강조돼 시즌 개막 첫 주 경기당 도루가 지난해 0.7개에서 1.36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성공률 또한 68.5%에서 80%로 크게 향상했다. 타율도 변화가 있었다. 첫 주 기준으로 지난해 0.230에서 0.247로 꽤 올랐다. 일반적으로 타자들의 컨디션이 시즌 초반 떨어져 있다는 걸 고려하면 유의미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이런 룰 개정을 통한 리그의 균형 회복이 단기간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마이너리그에서 수년간 테스트를 거친 뒤 MLB에 장착된 것이다.
야구의 꽃이라는 홈런이 짜릿함을 준다고 해도 장타에만 의존한 경기는 단조로워진다. 홈런 이외에 득점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작전이 사라지면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야구란 스포츠가 같은 이름이지만 성격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했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증을 거쳤다. 신약이 개발돼 시중에 풀리려면 수년의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에 대한 검증이 끝났다는 최종 결정이 나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리그 안팎의 의견을 수렴한 뒤 하위 리그에서 테스트를 거쳐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룰 개정은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 MLB의 이번 움직임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하고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피치 클록 단축을 두고 투수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나쁘지 않다. 수년에 걸친 시도와 참을성 그리고 보완만이 리그와 팬들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