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25)는 지난 16일 고척 KIA 타이거즈전에서 0-0이었던 연장 10회 말 1사 1루에서 상대 투수 김대유로부터 끝내기 투런 홈런을 치며 키움 히어로즈의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뒤 만난 이정후는 "'내가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내진 않았다. 장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안타도 잘 안 나오고 있어서 그냥 마음 편하게 쳤다"고 돌아봤다. 1루 주자 이형종이 진루하는 타격에 집중한 게 가장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얘기였다. 이정후는 지난주까지 출전한 11경기에서 타율 0.238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2022) 타율 1위(0.349)에 오른 리그 대표 타자지만, 올 시즌 초반은 타격감이 들쑥날쑥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정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입은 모았다. 정작 이정후는 "그런 말이 있는 건 알지만, 솔직히 나는 조금 걱정된다"고 했다. 말과 달리 이정후의 표정엔 여유가 엿보였다. 전광판에 낯선 숫자(타율)가 새겨져 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정후는 "타격 코치님·전력분석팀 인원들과도 자주 얘기를 나눈다.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이 낮아지긴 했지만, 타구의 속도는 오히려 작년보다 빨라졌다. 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결국 운이 없어서"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타격감과 상관없이 타율 관리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도 있다. 일단 상대 투수들이 이정후와의 승부에서 좋은 공을 주지 않고 있다. 이정후는 지난 1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부터 4경기에서 볼넷 6개를 기록했다. 올 시즌 타석당 볼넷은 0.17개로 지난 시즌 기록(0.11개)보다 훨씬 높다. 이정후는 "저연차 때는 (박병호·김하성 등) 내 뒤에 좋은 타자들이 많아서, 상대 투수들이 나와 승부했다. 올해는 어려운 승부가 이어지다 보니 (타격) 감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정후가 나올 때 어김없이 가동하는 상대의 우편향 시프트도 마찬가지다. 지난 7~9일 치른 NC 다이노스와의 창원 원정 3연전에서는 매 경기 1-2루 사이로 빠진 안타성 타구가 야수에게 잡히고 말았다. 타격 전문가 이종열 SBS 스포츠 해설위원도 이정후의 초반 부진 이유로 이 점을 언급했다. 이정후도 "강한 타구를 생산해도 (야수에게) 잡힐 때가 있었다. 공이 야수 키를 넘기거나 빈 곳으로 향해야 하는데, 타자가 의도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정후는 긍정적이다. 볼넷 출루가 많으면 후속 타자에게 기회를 열어준다. 이정후는 "(안타가 안 나온다고) 나쁜 공을 치기보다는 걸어나가는 게 낫다"고 했다. 수비 시프트에 대해서도 "다른 게 없다. 그냥 강한 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면 타율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