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초순이면 산수유꽃이 피기 시작해 며칠 사이 개나리꽃과 진달래꽃이 차례로 피고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벚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기 마련이다.
덕택에 4월 중순 목련꽃과 라일락꽃이 필 때까지 아름다운 꽃들을 길 따라 산 따라 찾아다니며 차례로 감상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그러나 올봄엔 이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확 피고 한꺼번에 확 져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3월 한 달 동안 생긴 이상 고온 현상 때문에 꽃나무들이 예년보다 일찍 싹을 틔운 영향 탓이라고 한다.
이 바람에 전국 지자체들이 꽃과 관련된 축제를 1주일이나 열흘씩 앞당겨 개최하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천천히 구경해야 제맛인 꽃 감상이 일찍 끝나버린 것 같아 섭섭한 마당에 이번에는 황사까지 몰려와 봄 분위기를 크게 망쳐버려 아쉬움이 남는다.
날씨야 어찌 됐든 올봄에도 어김없이 꽃노래가 새로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먼저 블랙 핑크의 멤버 지수가 4월 초 발표한 ‘꽃’이 파죽지세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단 열흘 만에 유튜브에서 1억 회의 조회 수를 돌파했다.
지난 15일자 빌보드 글로벌200 차트에선 미국 여가수 마일리 사이러스의 ‘꽃’(Flowers)이 11주간 정상을 밟고 있는 가운데 지수의 ‘꽃’이 뉴 엔트리로 2위에 올라 두 ‘꽃’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성인가요 이야기는 않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묻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필자의 나이 탓인지도 모른다. 두 여가수의 ‘꽃’을 비교하면서 듣다 보니 문득 두 노래의 분위기가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의 설정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수의 ‘꽃’은 실연의 아픔을 그렸다. 둘은 뜨겁게 사랑했지만 봄이 오면서 싸움 끝에 이별을 맞아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 이젠 안녕 굿바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잡지 않은 것은 너이지만 난 괜찮은데 넌 괜찮을까”라고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마일리 사이러스의 ‘꽃’ 역시 이별의 아픔을 그린 곡이다. 우린 값을 매겨 팔 수 없는 꿈과 사랑으로 가정을 꾸렸지만 그 가정이 불타버리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 자신을 위한 꽃은 내 스스로도 살 수 있다”면서 “내가 이 싸움을 원한 것도 아니고 너를 떠나길 원치도 않았다”며 뭔가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음을 밝힌다. 네가 꽃을 사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큰소리치지만 뭔가 남아 있는 미련이 드러난다.
70년 전에 만들어진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는 요즘 노래처럼 이별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그리지는 않았다. 다만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면서 가버린 옛사랑의 추억을 아쉬워했다.
지수의 ‘꽃’은 “처참하게 짓밟혀진 내 하나뿐인 라일락”이고, 마일리 사이러스의 ‘꽃’은 “네가 남기고 간 장미”였다. 반면에 ‘봄날은 간다’에는 피고 지는 꽃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지수의 ‘꽃’에선 향기를 그리면서 슬픔이 우러나는 반면에, 마일리 사이러스의 ‘꽃’에선 체리 빛 색깔을 손톱에 입히는데 장미꽃의 붉은 색깔이 나타난다는 부분에서 슬픔이 드러난다. ‘봄날은 간다’에서는 꽃 대신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간다는 장면에서 깊이 숨겨둔 한이 느껴진다.
지수가 “구름 한 점 없이 예쁜 날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라고 노래하는 부분에서 은근히 슬픔이 드러난다. 사이러스가 “캔 러브 미 베터. 아이 캔 러브 미 베터 베이비”라고 반복해 부르는 장면에서 역설적으로 슬픔이 느껴진다.
옛 가수나 요즘 가수나 심지어는 서양 가수의 것까지도 꽃과 관련된 노래를 들으면 하나같이 슬픔과 한이 느껴진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 얄궂은 꽃노래들을 소개했다.
석광인 대기자
전 스포츠조선 연예부장
전 예당미디어 대표
현 차트코리아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