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콘텐츠에는 짧은 장면일지라도 그 안에 의미심장한 장치가 보석처럼 숨어 있습니다.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이런 재미를 찾아보는 것이 바로 영상 콘텐츠의 매력입니다. 1초 만에 지나간 그 장면 속 의미를 짚어보고 깊이 있게 맛볼 수 있도록 ‘1초의 미장센’을 소개합니다.
배우 김희애와 문소리가 호흡을 맞춘 넷플릭스 시리즈 ‘퀸메이커’는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이자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쥐락펴락하던 황도희가 정의의 코뿔소라 불리며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변호사 오경숙(문소리)을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얽히고 설키는 수싸움이 매력적인 ‘퀸메이커’에서 김희애와 문소리는 ‘얼음’과 ‘불’같이 도저히 섞일 것 같지 않은 캐릭터를 맡았다. 절대 연대하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게 되는 계기는 대기업 오너 일가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던 황도희(김희애)의 ‘변심’이다.
극 중에서 김희애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은성그룹 전략기획실 브레인으로 등장한다.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인성을 가진 오너 일가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왔다. 평생을 바쳐 ‘똥개’처럼 살아왔다.
그런 황도희의 ‘어두운’ 과거를 조명하는 방법도 혼탁하다. 은성그룹 수장인 손영심(서이숙) 회장의 호출에 한달음에 달려간 황도희는 먹물이 가득한 그릇을 씻어내며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물속에서 먹물이 흐릿하게 퍼져가며, 황도희의 은성그룹 신입사원 시절 모습이 비친다. 손영심 회장의 스카프가 바람에 날아가자 황도희는 수백명의 직원 중 가장 먼저 뛰쳐나가 물에 빠진 스카프를 건져내온다. 그 맹목적인 충성심에 감동한 손 회장은 황도희에 스카프를 선물한다.
스카프는 황도희에게 ‘훈장’이자 ‘자랑’이었다. 동시에 ‘목줄’이기도 했다. 극 중에서 황도희는 늘 세련된 스카프를 매고 등장한다. 오너 일가의 모욕적인 언사나 주변에서 조롱하는 ‘똥개’ 소리도 의연하게 받아 넘긴다.
그러나 그 자랑스러운 ‘목줄’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성을 버려야 했다. 극 중 손영심 회장의 사위인 백재민(류수영) 이사장은 젠틀한 얼굴로 자신의 비서 한이슬(한채경)에 성폭력을 저지른다. 황도희는 ‘비서가 자신을 유혹했다’는 백재민의 말을 믿고 자신의 부하를 다그친다. 결국 한이슬은 황도희에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회사 빌딩 아래로 몸을 던진다. 그제서야 황도희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인간성’에 눈을 뜬다.
황도희가 백재민 이사장에 사실을 추궁하기 위해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은 앞으로 그가 ‘밝은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내달리는 황도희는 백재민 이사장의 위선을 눈치채게 된다. 황도희는 마지막으로 손영심 회장에 찾아가지만, 손영심 회장은 자신의 사위를 감쌀 뿐이다.
그제서야 황도희는 자신이 회장에게 ‘인간’이 아닌 ‘애완견’으로 취급받았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황도희는 처음으로 손영심 회장의 명령을 거부하며 인간성을 되찾는다. 뒤돌아선 황도희는 스스로 자신의 ‘목줄’인 스카프를 벗어던진다. 이제 ‘퀸메이커’의 시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