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투수 고우석(25·LG 트윈스)에게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아픔'이다. 겨우내 WBC만 생각하고 몸을 만들었지만, 어깨 염증 탓에 대회를 뛰지 못했다. 당시 상황을 곱씹던 고우석은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 없는 거 같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팔이 안 되더라"라며 울컥했다. 이어 "뭐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시도조차 못 하는 게 가장 무섭고 어려운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충암고를 졸업한 고우석은 비단길만 걸었다. 2017년 1차 지명으로 입단, 이듬해 1군 주력 불펜으로 도약했다. 2019년부터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다. 지난해에는 61경기에 등판, 4승 2패 42세이브 평균자책점 1.48을 기록했다. 리그 최연소 40세이브(24세 1개월 21일)를 달성하며 개인 첫 구원왕에 오르기도 했다. 시속 150㎞ 강속구에 두둑한 배짱까지 갖춰 '포스트 오승환'의 선두 주자로 불린다. 리그 역대 세이브 1위 오승환(삼성 라이온즈)과 비교하면 포커페이스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매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던 그였기에 이번 재활 치료는 남다른 경험이었다.
고우석은 "1군이 양지고 2군이 음지라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 자리를 위해 (2군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마음을 다잡는 시기가 된 거 같다. 그런 열정을 2군에서 배웠다"고 했다. 재활군에서 몸을 만든 고우석은 지난 11일 익산 KT 위즈 2군전, 15일 함평 KIA 타이거즈 2군전을 소화했다. 그가 2군에서 마지막 공을 던진 건 2020년이었다.
3년 만에 2군을 경험하면서 1군과 다른 시설에 놀란 것도 적지 않았다. 고우석은 "'아직 환경이 좋지 못하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2군 원정에서는 스피드건이 잘 고정되지 않더라. (열악한 환경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걸 보니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1군과 2군 시스템은 180도 다르다. 1군이 메이저리그라면 2군은 마이너리그다. 식사부터 경기장, 훈련 환경 등에서 차이가 크다. 고우석은 짧게나마 2군 생활을 하면서 초심을 되찾는 계기로 삼았다. 갑작스러운 어깨 통증을 원망하기보다 묵묵히 훈련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1군의 감사함도 느꼈다.
태극마크를 바라보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WBC는 프로야구 개막 전 열리는 대회라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이 작지 않았다. 예년보다 몸 상태를 빨리 끌어올려야 해 부상에 노출될 위험이 컸다. 실제 고우석은 어깨를 다쳤다. 대회를 원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태극마크를 피하거나 부담이 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할 때마다 영광스럽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마음이 크다. 기분 좋고 설레는 자리라는 건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계속 기량을 쌓아 올려서 나갈 때마다 좋은 성적을 내는 거다. 대표팀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단에선 연봉을 받기 때문에 그 사실 만으로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 같다"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고우석은 지난 18일 잠실 NC 다이노스전에서 1군 복귀전을 치렀다. 1이닝 3탈삼진 무실점 퍼펙트. 시속 156㎞ 강속구를 미트에 꽂으며 '왕의 귀환'을 알렸다. 그는 "다시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WBC에선) 못했다고 생각하니까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입단 후 가장 큰 아픔을 준 대회. 하지만 한 뼘 더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