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25·키움 히어로즈)와 손아섭(35·NC 다이노스).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격 도사'들이 함께 슬럼프에 빠졌다. 두 선수 모두 오프시즌 타격 스타일에 변화를 줬지만, 효과가 미미하다.
이정후의 4월 성적표는 어색하다. 17경기 타율이 0.197(66타수 13안타)에 불과하다. 규정 타석을 채운 64명의 타자 중 57위. 장타율(0.364)과 출루율(0.329) 모두 40위권 밖이다. 이정후의 통산 타율은 0.339로 3000타석 기준 역대 1위다. 지난해 타격 5관왕(타율·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에 오르며 최우수선수(MVP)까지 거머쥔 타자의 공격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겨우내 이정후는 타격 자세를 미세 조정했다. 올 시즌 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빅리그 문을 노크할 계획인데 메이저리그(MLB) 투수의 빠른 공에 대처할 수 있는 간결한 타격 자세를 장착했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당시 그는 "보폭(스탠스)을 조금 좁히고 (배트를 잡은) 팔의 높이를 낮췄다"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 적응기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는데 예상보다 부침이 심하다. 지난해 0.05(627타수 32개)이던 타석당 삼진(KK/PA)이 올해 0.10(79타석 8개)으로 두 배 가량 늘었다. 왼손 투수 피안타율은 0.327에서 0.188로 크게 하락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선수를 위한 변명일 수 있지만 스트라이크 존도 예전과 같지 않게 더 넓어진 것 같다. 좋지 않다 보니 그런 점이 더 부각된다"고 옹호하면서도 "안타 하나, 홈런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다. 본인이 원하는 타격 메커니즘이 나오지 않고 있다. 분석팀과 답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후가 침묵하자 키움의 팀 타율은 9위까지 떨어졌다.
손아섭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경기 타율이 0.256(78타수 20안타)에 그친다. 타격 역대 5위, 현역 선수 중에선 이정후와 박건우(NC)에 이은 3위지만, 올 시즌 유독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출루율은 0.294로 리그 56위. 통산 출루율이 0.395라는 걸 고려하면 콘택트는 물론이고 출루까지 비상 걸렸다.
이정후와 마찬가지로 손아섭도 오프시즌 타격에 변화를 줬다. 스프링캠프에 앞서 미국에서 타격 아카데미를 운영 중인 강정호(은퇴)와 의기 투합했다. 타격감이 절정이었던 2013~2014년의 스윙을 찾으려고 애썼다. 캠프에서 그는 "결국 (가장 베스트는) 그때 스윙이더라. 그 당시에는 (그게 가장 좋다는 걸) 몰랐다"며 "지금은 스윙 준비자세가 비슷하더라도 스윙이 나오는 궤적이 많이 바뀌었다. 폼만 보면 구분이 안 될 수 있다. 좋았던 스윙 궤적이 사라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 안 좋은 버릇이 생겼다. 내가 생각한 스윙과 다르게 됐다"고 자책했다.
NC 이적 두 번째 시즌. 약점을 바로잡으려던 시도가 강점마저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를 4번 타순에 배치하는 강인권 NC 감독의 신뢰가 무색할 정도다. 그래도 이름값을 생각하면 기대가 여전하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정후나 손아섭 모두 리그에서 이미 검증을 마쳤다. 4월에 부진하더라도 언제 반등할지 모르는 선수들이다.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