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랫동안 고민했다. 써야 할 지 말아야 할 지를. 지혜로운 사람 여럿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대부분 말렸다. "골프 세상에서 그들이 가진 영향력은 뱁새 김용준 프로 당신이 가진 그것 보다 열 배, 아니 백 배 크니 난처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조언도 들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기로 했다. 일간스포츠와 독자를 믿고. 골프 세상이 난장판이 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자는 뜻도 담아서. 무슨 이야기이길래 뜸을 들이느냐고? 독자가 진정한 골퍼라면 듣고 부아가 치밀어 오를 수도 있다.
몇 주 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2023 챌린지투어' 시즌을 시작했다. 코리안투어를 꿈꾸는 신예가 기량을 겨루는 2부 투어이다. 참가자가 많아서 여러 지역으로 나눠 예선전을 치러 본선 참가자를 정한다. 그런데 첫 대회 예선에서 경기위원회가 한 지역 시합을 취소했다가 나중에 다시 치렀다. 그 지역 예선에 참가한 선수는 한참 라운드를 하다가 짐을 쌌다. 날씨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대회를 중간에 취소한 이유가 뭐였냐고?
뉴스를 본 독자도 있을 것이다. 홀(Hole)이 규칙이 정한 것 보다 컸기 때문이다. 흔히 '홀컵'이라고 하는 데 '홀'이나 '컵(Cup)'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홀 한 개만 큰 것도 아니고 열 여덟 개 전체가 다 컸다고 한다. 그 골프장이 그 컵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처음 살 때 모르고 산 것이라고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규격에 맞는 컵도 한 벌 갖고 있다고 한다. 창고 한 켠에 박혀 있어서 한참 만에 찾아냈다나?
그렇다면? 독자가 생각한 대로다. 해당 골프장 운영사는 그 골프장 말고도 골프장을 몇 개나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도권 명문 퍼블릭 운영권을 손에 넣어 세간이 부러워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네? 홀이 크다고요?" 뱁새는 갑자기 시합을 취소한 사유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따금 골프장에서 ‘이벤트 홀’이라고 냉면 그릇만한 사이즈로 만든 홀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홀이 규칙이 정한 것 보다 6㎜나 컸다고 한다. 한 홀도 아니고 열 여덟 홀 전부 그랬다면 절대 실수가 아니다. 분명히 뚜렷한 목적을 갖고 한 일이다.
왜 그렇게 단정하냐고? 골프장 용품을 파는 업체가 규격에 맞지 않는 '컵'을 제멋대로 만들어서 골프장에 알리지도 않고 팔까? 감히? 아니면 부탁을 받고 주문 생산을 할까? 그것을 맞춰다가 사용하는 골프장은 무슨 마음일까? 안 봐도 뻔하다. 빨리 홀 아웃 하라는 이야기이다.
에이! 홀 조금 크다고 홀 아웃이 얼마나 빨라지느냐고? 빨라진다. 공인 골프공은 크기가 42.67㎜이다. 이 보다 더 작게 만들면 규칙 위반이다. 이 골프공이 규칙이 정한 홀 크기(108㎜) 보다 6㎜나 큰 홀을 향해 굴러간다면? 홀에 들어갈 확률은 엄청나게 높아진다.
골프공은 무게 중심이 홀쪽으로 기울면 홀에 떨어진다. 그러니 기준을 초과한 6㎜를 골프공 크기의 절반인 21.335㎜와 비교해야 마땅하다. 산술적으로는 30% 정도 홀인 확률이 높아진다. 홀 아웃을 빨리 하면 골프장이 어떤 이득을 보는 지는 말하나마나다.
이 일로 해당 지역 경기위원회 팀장은 책임을 지고 경기위원회를 떠났다. 원로에 가까운 이름 있는 프로 골퍼인 그가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 뱁새는 너무 안타깝다. "노련한 경기위원이라면 홀 크기를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고 누군가 뱁새에게 물었다. 턱도 없는 소리이다. 전 세계 어떤 경기위원이 '골프장이 규격 보다 더 큰 컵을 쓸 것이라고 의심하고' 체크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프로 대회를 치르는 골프장이.
그래서 찾아 봤다. 홀이 커서 대회를 취소한 사례가 있는지를. 뱁새로서는 아무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례를 아는 독자가 있다면 귀띔해 주기 바란다. 골프 규칙은 여러가지 물건의 규격을 정하고 있다. 골프공 크기와 무게는 이미 독자도 잘 알 것이다. 티(Tee) 길이도 제한하고 있다. 홀 크기도 마찬가지이다. 이 규격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이미 골프가 아니다. 골프가 아니면 무엇일까? 그렇다. 놀이다. 그렇다면? 더 큰 홀을 쓰는 골프장은? 골프장이 아니다. 놀이공원이지. 뱁새는 앞으로 그 골프장을 골프장이 아니라 ‘어뮤즈먼트 파크(Amusement Park)’라고 부르기로 했다. 할 말을 다 못해서 다음 회에 이어가겠다.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