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매력은 작품 안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확장된다는 점 아닐까요. 좋은 영화 한 편이 촉발한 감상과 의미를 다른 분야의 예술과 접목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환승연예’는 영화, 음악, 도서, 미술 등 대중예술의 여러 분야를 경계 없이 넘나들며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누군가에겐 장밋빛인 도시가 누군가에겐 잿빛이고, 누군가에겐 꽃길이 누군가에겐 가시밭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방향대로 세상을 인식하게 마련이다.
여기,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것은 피부색과 국적뿐. 그리고 그 두 가지는 누군가의 인생을 평범한 사람들과 아주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간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의 토리(파블로 실스), 로키타(졸리 음분두)는 벨기에 정착을 희망하는 난민이다. 토리는 어린 시절 주술사로 몰려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고, 이를 인정받아 벨기에 체류증을 받았다. 로키타는 사정이 다르다. 나이도 많고 뚜렷한 학대 이력도 없고 토리와 남매라는 것도 잘 증명되지 않는 그에겐 체류증이 쉽게 발급되지 않는다.
한편 연극 ‘아낙’(ANAK)의 메디는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 여성이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을 뿐 필리핀에서 메디는 평범한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한국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로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한 그는 어느 날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채 투신한다. 이주 여성인 엄마 아래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자란 10대 한나는 엄마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남겨진 삶을 견뎌야 한다.
누구나 안전을 추구한다. 주변과 다른 뭔가 낯선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은 태고 때부터 그렇게 위험을 인지하고 피해왔다. 우리 사회에 떨어진 이주민들의 외양은 낯설고, 그 낯섦은 알게 모르게 거부감이나 두려움으로 표출되곤 한다. 호기심 역시 때로는 폭력이란 외연을 쓰고 나타난다.
‘토리와 로키타’와 ‘아낙’은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과 사소한 호기심 같은 것들이 눈송이처럼 구르고 굴러 얼마나 큰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를 다르다고 인지하고 대하는 순간 그 사람은 평범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박탈당한다. 평범함을 잃은 사람들은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다.
한국에서도 다문화 가정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난민 문제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하고 있다. 어떤 게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토리와 로키타’, ‘아낙’과 같은 작품들은 현실을 응시할 뿐이다. 결혼 이주 여성 10명 가운데 4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현실과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상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없는 사람’ 취급되는 이들에게도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겠느냐는 이 작품을 본 이들이 선택할 일이다. 다만 같은 선택을 내리더라도 관람 전후의 마음만은 달라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