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 탈락, 도쿄 참사를 막지 못했다. 그 후유증은 KBO리그 정규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구팬은 국내 무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문제는 선수들의 컨디션이다. 심신의 피로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KBO리그가 개막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야구 국가대표팀이 WBC 일정을 마무리한 지는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대표팀 선수들의 컨디션을 살펴보기에 적절한 시기다.
많은 선수가 고전하고 있다. 2022시즌 KBO리그 MVP(최우수선수)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26경기에서 타율 0.233에 그쳤다. 시즌 3경기 만에 허리 통증이 생겼지만, 이를 다스리고 복귀한 뒤에도 좀처럼 타격 성적이 오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타격 수정 변화에 따른 시행착오 여파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WBC를 소화하면서 비시즌 루틴이 깨졌고, 실전 감각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개막을 맞이한 게 고전하고 있는 이유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마운드에선 박세웅(롯데 자이언츠)이 부진하다. 등판한 5경기에서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5.25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0.352에 이른다.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2.08.
소속팀은 1위로 4월 일정을 마치며 하늘을 찌르는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박세웅은 웃지 못했다. 심적으로도 조바심이 전해진다. 지난 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공보다 그의 표정이 더 안 좋았다. 결국 팀이 앞선 5회 말 2사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아웃카운트 1개를 채우지 못해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박세웅은 마운드 위에 오른 배영수 투수 코치를 향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현재 그의 컨디션을 가늠할 수 있는 한 마디였다.
이정후와 박세웅은 대회에서 잘 치고, 잘 던졌다. 대표팀의 1라운드 탈락에도 국제 대회 경쟁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정작 리그에서 부진하며 너무 빨리 페이스를 끌어올린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시선을 받고 있다.
부상자도 많다. LG 트윈스 마무리 투수 고우석은 WBC에 뛰지 못했다. 의욕적으로 대회를 준비했지만, 오버 페이스가 된 것 같다. 팔 부상을 다스리고 복귀했지만, 구위나 위압감이 세이브 1위에 오른 지난 시즌보다 떨어졌다. 지난 1일엔 허리 통증으로 재활군으로 이동했다. 전날(4월 30일) KIA전에선 아웃카운트 1개를 잡는 동안 홈런 포함 3안타와 볼넷 2개를 허용하며 부진했다.
NC 다이노스 마무리 투수 이용찬도 마찬가지다. 개막 초반에는 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좋은 컨디션을 보여줬지만, 이후 실점이 크게 늘었다. 4월 23일 롯데전에선 1이닝 동안 5점을 내줬다. 결국 휴식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갔다. KIA 간판타자 나성범은 대표팀 훈련 소화 때 생긴 종아리 통증을 다스리지 못했고, 결국 장기 이탈이 불가피한 부상으로 커졌다.
감독까지 차출됐던 KT 위즈도 만신창이다. 선발 투수 소형준이 개막 첫 경기(4월 2일 LG 트윈스전)에서 2와 3분의 1이닝 동안 10피안타 9실점하며 부진한 뒤 팔뚝 염좌 진단을 받고 재활 치료를 받았다. 지난 3일 SSG전에 복귀, 5이닝 1실점 호투했지만 아직 조심스럽다.
중국 대표로 뛰었던 주권도 전완근 부상으로 시즌 첫 등판을 하지 못했다. 최근엔 대표팀 4번 타자였던 박병호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이 부상은 WBC 후유증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통상적인 시즌 초반 컨디션과 비교해 피로가 많이 쌓였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펄펄 날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두산 베어스 곽빈은 3~4월 평균자책점 0.88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 시즌을 예고했다. NC 에이스 구창모도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82를 남겼다. 김광현은 초반에는 WBC 여파로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최근 2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해냈다. WBC에서 1번 밖에 등판하지 않아 실전 감각 저하가 우려됐던 양현종(KIA)도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하며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 LG 리더 김현수는 타율 0.382 17타점, 최정은 초반 부진을 딛고 타율 0.290·4홈런을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