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이 배우에 대해 알 것 같다 하면 또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배우 이선균은 지금껏 해왔던 작품이나 상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계속 새로운 행보로 영화 팬들을 놀라게 한다.
이선균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잠’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끝까지 간다’(2014), ‘기생충’(2019)에 이어 세 번째 칸 방문을 무려 두 작품을 가지고 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선균의 행보가 눈에 띄는 건 최근 그의 출연작 때문이다. 최근 5년 내외로 이선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크게 회자된 작품을 꼽으라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영화 ‘기생충’을 빼놓을 수 없다.
‘나의 아저씨’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동훈(이선균)과 지안(이지은)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방송이 끝난 지 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로부터 ‘인생 드라마’라는 평을 받고 있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한 작품. 이선균은 이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그런 이선균이 ‘기생충’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 ‘킬링 로맨스’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 ‘남자사용설명서’(2013)로 한국 코믹 영화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원석 감독의 ‘킬링 로맨스’에서 이선균은 정체불명의 섬나라 재벌 조나단을 연기했다. 이선균 조차 ‘왜 이 시나리오를 나한테 줬을까’를 생각했을 만큼 파격적인 코미디 연기였다.
이원석 감독은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으로 한국 영화계가 잔치 분위기일 때 울상이었다. 이 정도로 굵직한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으니 이선균이 차기작으로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선택하지 않으리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선균은 보란 듯이 ‘킬링 로맨스’를 선택, 역대급 변신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선균은 ‘킬링 로맨스’ 개봉 당시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코미디 장르도 좋다. 내게 또 주어진다면, 그리고 시나리오가 재미있다면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나의 아저씨’나 ‘기생충’ 이후에 ‘킬링 로맨스’로 망가지는 연기를 한 것에 대해서도 “전작들을 좋아했던 분들이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가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보시는 분들도 좋아하실 거라 본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런 작품이나 상을 생각지 않고 연기자로서 본연의 일에 집중하는 이런 태도가 ‘잠’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라는 또 다른 ‘칸영화제’ 초청작을 필모그래피에 더한 것일지 모른다.
‘잠’은 남편 현수(이선균)가 수면 중 이상행동을 하면서 행복한 신혼부부의 삶에 악몽이 드리워지는 내용을 그린 미스터리 영화다. 공포가 가미된 영화를 통해 이선균은 또 한 번 연기 변신을 한다.
제76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짙은 안개 속 붕괴 직전의 공항대교에 고립된 사람들을 그린 영화. 이 영화에서 이선균은 딸과 함께 재난 상황을 맞닥뜨린 차정원 역을 맡아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펼칠 전망이다. 두 영화가 칸에서 얼마나 세계 언론에 조명을 받을지, 그리고 이선균의 변신에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놀라워 할지, 작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그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