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이 지난달 발매된 미니10집 ‘FML’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2위에 오르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그간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K팝의 위상을 높이는 기둥 역할을 한 가운데, 글로벌 정상에 도약하기 위한 차기 아티스트들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8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에 따르면 세븐틴은 컨트리 가수 모건 월렌에 이어 ‘빌보드 200’에서 2위를 차지했다. 세븐틴은 총 13만5000장 상당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고, 실물 CD 등 전통적 앨범 판매량은 13만2000장으로 이번 주 가장 많이 팔린 앨범에 올랐다.
‘빌보드 200’은 앨범 자체의 순위를 매긴다. 음반과 EP를 대상으로 하며, 판매량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기 때문의 팬덤의 힘을 측정할 수 있는 차트로 여겨진다.
빌보드 차트는 모두 미국 내에서 기록된 지수만 집계된다. 타 국가의 판매량이나 외국 사람들이 스트리밍한 다운로드는 집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스트리밍의 경우 미국 내 음원 플랫폼인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비보 등 대형 사이트 지수를 모두 합쳐 처리된다. 결국 ‘빌보드 200’ 2위라는 성과는 세븐틴이 북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지표인 셈이다.
세븐틴의 이 같은 놀라운 성장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게 아니다. 현재는 대형 기획사인 하이브 소속이지만, 본래 중소기업 플레디스에서 차근차근 밑바닥을 다진 세븐틴은 꾸준히 자신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로 실력을 입증받아왔다.
2015년 5월 발매된 세븐틴의 데뷔 앨범 ‘17캐럿’은 초동 판매량 약 1600장으로 저조한 출발을 알렸다. 그에 반해 세븐틴의 가장 최신 앨범인 ‘FML’은 발매 첫날 판매량만 400만장을 기록하며 K팝 역사상 역대 초동 1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서서히 자신들의 음악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방탄소년단의 서사와도 닮았다.
또 400만 장 중 판매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215만 장이 중국 팬들의 공동구매를 통해 팔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한령 이후 K팝 중국시장이 사실상 닫혀 있는 가운데 세븐틴이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뜻 깊다. 경색된 한중 관계가 정상화되면, 세븐틴이 중국에서 지금보다 더 엄청난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라 불리는 7년을 넘어 올해 데뷔 9년 차가 된 세븐틴이 이토록 국내외를 막론하고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이유는 바로 해외 아티스트 중에서는 보기 드문 강한 에너지와 퍼포먼스 덕분이다.
실제 세븐틴의 퍼포먼스는 상당히 역동적이고 강렬하며 남다른 에너지를 뿜어낸다. 지난 2021년 미국 유명 음악 전문 방송 MTV는 세븐틴의 ‘락 위드 유’와 ‘크러쉬’ 무대를 보고 “13명이 하나의 팀으로 보여줄 수 있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전한다. 그들이 완성하는 퍼포먼스는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세븐틴의 세계로 보는 이들을 이끈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또 세븐틴만의 특별한 ‘콘텐츠’도 국내외에 충성 팬덤을 형성하는데 한 몫을 톡톡히 했다. 통상적으로 데뷔 9년 차 아이돌 그룹은 솔로 활동의 비중이 많아지거나 심한 경우 해체의 길에 이르기도 하지만, 세븐틴은 ‘완전체’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다. 매년 13명이 모두 참여한 앨범이 꾸준히 발매되고 있으며,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자체 프로그램 ‘고잉 세븐틴’을 통해 친근한 매력을 자랑하고 있다. 멤버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과 잦은 활동이 오늘날의 세븐틴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재근 대중음악 평론가는 “세븐틴 13명의 멤버들 모두 실력이 뛰어나고, 항상 좋은 음악과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음악 차트는 팬덤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들은 앨범 구매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븐틴이 ‘빌보드 200’ 차트 2위에 올랐다는 것은 세븐틴이 상당한 기초 팬덤을 형성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포스트 BTS 시대 열렸다
세븐틴 외에도 북미 진출을 위해 후발주자로 나선 아이돌 그룹이 다수 존재한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를 필두로 전 세계에서 K팝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현재, 실력이 기반이 된 국내 아티스트들은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팀은 바로 신인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다. 지난해 11월 데뷔한 피프티 피프티는 2월 발매한 싱글 2집 타이틀곡 ‘큐피드’로 공개 한 달여 만에 빌보드 ‘핫100’(4월 1일자)에 진입했다. K팝 걸그룹 역사상 데뷔 후 가장 빠른 속도로 핫100 진입에 성공한 사례로,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은 채 ‘큐피드’는 ‘핫100’에 6주 연속 차트인에 성공했다.
하이브 레이블즈 산하 아티스트 4팀은 4월 빌보드가 꼽은 ‘주목해야 할 K팝 스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방탄소년단 동생 그룹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1월 발매된 ‘이름의 장: 템프테이션’으로 ‘빌보드 200’ 정상을 밟았다.
곧 컴백을 앞둔 엔하이픈은 지난해 세 번째 미니앨범 ‘메니페스토’로 ‘빌보드 200’에 자체 최고기록인 6위로 진입했다. 르세라핌은 지난해 10월 발매한 ‘안티프래자일’로 ‘빌보드 200’서 14위를 기록했다. 뉴진스는 ‘핫100’에 ‘OMG’(1월 발매)와 ‘디토’(2022년 12월 발매) 두 곡을 모두 진입시켰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도 빼놓을 수 없다. 에스파는 지난해 7월 공개한 ‘걸스’로 ‘빌보드 200’ 3위에 올랐고, 3월 발매된 NCT 127의 ‘에이요’는 ‘빌보드 200’에 13위에 등극했다. 두 그룹 모두 빌보드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K팝 스타’에 뽑혔다.
이 외에도 에이티즈, 스트레이 키즈 등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티스트가 존재한다. K팝의 새 역사를 써낼 ‘포스트 BTS’의 탄생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