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정도로 끝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젠 대사 외우는 게 쉽지 않아요. 좋은 후배들이 더 멋진 ‘리어왕’을 표현할 거예요.”
올해 데뷔 67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87)가 2년 만에 연극 ‘리어왕’으로 돌아온다. 2021년 공연된 ‘리어왕’에서도 그는 타이틀롤을 맡아 전 회차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최고령 현역 배우의 위엄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순재는 이번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리어왕’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고 전해, 그의 마지막 ‘리어왕’을 보려는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 장학빌딩 베리타스홀에서 ‘리어왕’ 개막을 앞두고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현장에는 이순재를 비롯해 권민중, 서송희. 지주연, 임대일 외 8명의 배우들과 총괄 프로듀서 윤완석, 연출 김시번이 참석했다.
이날 이순재는 “‘리어왕’ 초연 때 걱정이 많았는데 관객들이 성원해 준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며 “고전이라는 건 볼 때마다 다르다. 경험이 쌓일수록 문학성이 달라진다”고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리어왕’은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기원전 8세기 고대 브리튼 왕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순재는 절대 권력을 가졌던 왕이 미치광이 노인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려내며 전율을 선사할 전망이다.
2년 전에 이어 다시 리어왕을 연기하는 이순재는 초연과 다른 점에 대해 “젊은 친구들이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인력들이 들어오면서 더 알찬 무대가 됐다”며 “이전에 놓쳤고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완하고 ‘제대로 해보자’라는 의미에서 다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공연과 장치에 변화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초연 당시에는 객석에서 배우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엔 없다”며 “이번엔 원칙을 지키면서 한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단 16회만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회차당 러닝타임만 3시간 20분에 달한다. 이순재는 “이젠 대사 외우는 게 쉽지 않다. 난 이 정도로 끝내지 않을까 싶다”며 “좋은 후배들이 더 멋진 ‘리어왕’을 표현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몫을 해낼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얼마나 깊이 들어가냐의 차이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건 다들 갖추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순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연출자뿐만 아니라 배우들도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문학과 철학, 풍자들이 다 섞여 있어 배우들이 대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관객들의 이해도가 달라진다고 전했다.
이순재는 “깊은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 때문에 그게 표출되지 않으면 하나의 얘깃거리로 끝나고 만다. 작품 구석구석에 여러 교훈이 있다”며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리어왕’에는 이순재를 비롯해 탄탄한 경력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간교한 말솜씨로 그의 유산을 차지하는 첫째 딸 고너릴 역에는 권민중이, 아부와 아양으로 리어의 유산을 받아내는 둘째 딸 리건은 서송희가 맡는다. 두 언니와는 달리 진실만을 말하는 셋째 딸 코딜리아 역에는 지주연이 이름을 올렸다. 이외에도 임대일, 염인섭, 최종률, 김현균, 박용수, 박재민 등이 참여한다.
‘리어왕’은 6월 1일부터 1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에서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