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최고경영자)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위기에 빠진 KT가 이사진 구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영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구현모 전 대표와 윤경림 전 사장 등 'KT맨'들이 낙마하며 정치권 외풍이 잦아드는 듯했지만, 검찰의 수사망이 급속도로 좁혀지면서 안팎으로 여전히 시끄러운 상황이다.
KT는 차기 대표 선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사외이사 예비 후보가 총 19명 접수됐다고 17일 밝혔다.
KT는 지난 8일부터 16일 오후 1시까지 사외이사 예비 후보 주주 추천을 받았다. 자사 주식을 6개월 이상, 1주라도 보유한 모든 주주가 후보를 추천할 수 있었다.
대표 선임 절차 개선과 이사회 역할 재정립 등 중책을 맡은 '뉴 거버넌스 구축 TF'를 지난 4월 구성할 때는 지분율 1% 이상 국내외 주요 주주들만 전문가를 추천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일정 기준을 충족한 대다수 투자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확 낮췄다.
덕분에 개미(개인·소액투자자) 대표도 KT 사외이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최대 주주 국민연금과 여당의 흔들기로 KT의 기업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며 의결권 행사 등 단체행동을 예고한 회원 약 1900명의 네이버 카페 'KT주주모임' 운영자가 나섰다.
카페 회원들은 "주주연대 대표가 사외이사로 진입하는 좋은 사례"라며 응원의 댓글을 남겼다
KT는 사외이사 예비 후보 자격을 리스크·재무·경영·ICT 실무 경험 및 전문 지식과 윤리의식·책임성 등을 보유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소수 노조인 KT새노조는 김종보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공정거래·상법·노동 분야 법률전문가로, 정경유착 문제와 비합리적인 기업 경영에 맞서 개혁을 추구해왔다는 평가다.
KT는 국민연금·현대차·신한은행 등 대주주들이 후보를 추천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KT 관계자는 "심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외압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후보들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주인 없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 만큼, 이번에 선임되는 사외이사들의 영향력은 전과 달리 막강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KT는 향후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사내이사의 참여를 배제하고, 이사회 내 사내이사 수도 3명에서 1명으로 줄인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경영진의 내부 참호 구축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결단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외이사 예비 후보 추천 마감일에 검찰이 KT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펼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본사는 물론 계열사, 관계자 사무실 10여 곳을 뒤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구현모 전 대표 시절 KT가 KT텔레캅의 일감을 KDFS에 몰아주고, 이를 바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 자금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KDFS는 2010년 8월 KT에서 분할한 시설 관리 업체다.
정치권이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KT는 신중하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KT 측은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했다.
KT는 오는 6월 초 사외이사 후보군을 7명으로 압축하고, 같은 달 말 1차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최종 선임할 예정이다. 이어 7월 새로운 사외이사들을 중심으로 차기 대표 후보를 확정하고, 8월 2차 임시 주총에서 공식적으로 운전대를 맡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