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농민신문 기자 때의 일입니다. 양파 가격이 폭락해 난리가 났고, 현지 취재를 위해 전남 무안으로 달려갔습니다. 무안 읍내 도로변에는 양파가 담긴 자루가 널브러졌고, 양파 썩는 고약한 냄새가 읍내를 덮고 있었습니다.
데스크가 제게 주문한 것은 농민이 얼마나 적자를 보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사였습니다. 정부와 농협이 내놓은 통계 수치를 가지고 하는 분석 기사 말고, 현장감이 있는 기사를 요구한 것이었지요.
농협을 통해 해마다 양파를 재배하는 농민을 소개받았습니다. 슬레이트 지붕의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양파 가격 폭락으로 난리가 났는데도 농민은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한해 걸러 벌어지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영농일지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기록이 매우 부실했습니다. 종자값, 비료값, 비닐값, 인건비 등등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덧셈을 했습니다. 곁에서 농협 직원이 도왔습니다. 농민은 영농투입비 계산을 처음 해보는 듯했습니다. 예상 수입은 수확량에다 시세를 곱하여 얻었습니다. 예상 수입에서 영농투입비를 빼니까 마이너스가 나왔습니다.
농민은 그때에야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실감하는 듯했습니다. 계산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농협 직원과 함께 몇 차례 검산까지 하고 나서야 적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정한 일일 수도 있는데, 그때에는 현실에 대한 직시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적자에 고통스러워하는 농민에게 이 말을 던졌습니다.
“이 계산에는 선생님의 인건비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선생님의 양파밭에서 일하는 대신에 다른 일을 하였다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있잖아요. 여기 이 적자에다가 그 돈까지 더해야 선생님이 본 적자 규모가 정확해지겠지요.”
농민은 제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자신이 한 노동이 돈으로 계산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자본주의 논리가 전통적인 농민 정서에는 어색할 수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때 그 기사에 농민의 인건비를 적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양파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책이 없습니다. 한해 폭등하면 한해 폭락을 합니다. 양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늘도 그렇고, 고추도 그렇고, 배추도 그렇고. 이 작은 나라에서 그 빤한 논밭에서 거두어내는 그 빤한 농산물의 수급 조절을 정부는 내내 실패합니다. 이 실패는 정부가 진보이든 보수이든 가리지 않고 똑같습니다. 농산물 수급 조절과 관련해서는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라고 막말을 해도 될 지경입니다.
올해도 양파 재배 농민은 힘듭니다. 양파 재배 면적이 줄고 생산량이 감소했는데도 양파 가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번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물가 조절용으로 수입한 양파의 양이 상당해 이를 풀면 국내산 양파 가격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산물은 풍년이 들면 폭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흉년임에도 폭락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가 있습니다.
양파가 풍년으로 가격이 폭락하면 소비 촉진 운동이 벌어집니다. 어느 해에는 양파를 공짜로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농민에게서 대량으로 구입해 공짜로 뿌리니까 고맙기는 하지만, 이게 합리적인 방법인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 공짜 양파를 먹는 동안에는 시장의 양파 수요가 줄어들 것이니 결국은 양파 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동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풍년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할 때에는 “제값에 팔아주기 운동”이어야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양주 마시기”라는 캠페인도 있었습니다. 양파를 썰어서 소주병에 넣어 마시는 겁니다. ‘양주’는 의외로 산뜻하고 달콤하여 맛있습니다. 문제는, 마시고 난 다음입니다. ‘양주’를 한 병 이상 마시면 입에서 양파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반 병 정도는 괜찮습니다.
양파 가격이 어떠하든, 봄이면 저는 조생종 양파를 잔뜩 삽니다. 대충 썰어서 된장과 함께 상에 올립니다. 조생종 양파는 달고 연하여 끼니에 한 개가 뚝딱입니다. 양파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