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KBO 프로야구 SSG랜더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14일 오후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렸다. 연장 12회초 2사 1,3루 김인환의 역전 적시타가 터지자 최원호 감독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인천=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사령탑을 교체한 한화 이글스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화는 17일 기준으로 13승 21패 2무(승률 0.382)로 9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 7일 최하위에서 탈출했고, 최근 10경기 성적이 6승 3패 1무로 좋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독을 교체했다. 11일 대전 삼성 라이온즈전 승리 직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경질하면서 최원호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선임 직후 최원호 감독은 본지와 통화에서 "경기력이 괜찮아진 상태에서 내가 (팀을) 맡게 됐다. 큰 틀을 바꿀 생각은 없다. 최근 경기력과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 기용은 그대로 밀고 나갈 생각"이라고 전했다.
2023 KBO 프로야구 SSG랜더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14일 오후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렸다. 6회 초 1사 1루 오그레디가 타격을 하고 있다. 외야 뜬공. 인천=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그런데 변화의 기미가 감지된다. 외국인 타자 브라이언 오그레디 기용이 대표적이다. 오그레디는 지난달 23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당시 타율이 0.127에 불과했고, 퓨처스(2군)리그에서도 반등의 기미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11일 1군으로 돌아왔고, 공교롭게도 그날 수베로 감독이 경질됐다.
오그레디는 사령탑이 바뀌고 두 번째 경기부터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3연승을 달리던 한화는 오그레디가 출전한 3경기에서 1무2패에 그치다 17일에야 승을 따냈다. 이 기간 오그레디의 성적은 14타수 2안타. 17일 기준 오그레디의 시즌 성적은 여전히 타율 0.130(77타수 10안타) OPS(출루율+장타율) 0.350에 불과하다.
오그레디를 기용하기로 한 최원호 감독조차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한화는 16일 롯데 자이언츠전 8회 말 0-1 상황에서 선두 타자 오선진이 2루타를 쳐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가능한데 오그레디 대신 대타 박정현이 등장했다. 그는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번트 자세를 취했다. 득점 기회에서 진루타조차 기대할 수 없고, 수비 비중도 작은 오그레디를 선발 라인업에 넣었다는 의미다.
2023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두산베어스의 경기가 3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한화 수베로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잠실=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베이스러닝 방향성도 달라졌다. 수베로 감독은 부임 후 한결같이 공격적인 주루를 강조해 왔다. 주자들에게 언제든지 뛰어도 좋다는 '그린 라이트'를 부여했다. 그라운드에 나가면 전력을 다해 뛰고, 어떻게든 한 베이스를 더 가라고 지도했다. 주루사가 나와도 문책하지 않았다.
사령탑이 바뀐 직후 바로 문책성 교체가 등장했다. 정은원은 지난 14일 SSG 랜더스전 3회 초 1사 1·2루 상황에서 3루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됐다. 최원호 감독은 3회 공격 종료 후 정은원을 문현빈으로 교체했다. 최 감독은 16일 경기 전 "퓨처스 경기가 아닌 1군 경기"라고 강조했다. 도루가 필요할 땐 사인을 벤치에서 내고, 14일 3회 말에는 뛰지 말라고 사인을 줬다고 밝혔다.
최원호 감독의 지시는 오답이 아니다. 득점 기회에서 3루 도루는 득점 가능성을 크게 높이지 못한다. 그러나 문책성 교체는 새 감독으로 인해 달라진 기조를 선수단에 전달하는 의미가 크다. 수베로 감독 색깔을 지우는 작업으로 읽힌다.
수비 시프트 역시 달라진다. 한화는 수베로 감독 부임 후 수비 시프트 빈도와 강도를 대폭 늘렸다. 이 기간 DER(인플레이 타구 처리율)은 2021년 0.691(3위) 2022년 0.676(8위) 2023년 0.698(1위·최원호 감독 부임 후인 17일 기준)를 기록했다. 결과가 나쁘다고 보긴 어렵지만, 최원호 감독은 "선수들의 의견을 종합해 가이드라인을 조금 수정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코치진과) 나눴다"고 전했다. 변화의 폭은 '조정'도 있고, '원상 복귀'도 될 수 있다.
한화 문동주. 한화 이글스 제공
철저히 관리했던 최고 유망주 문동주의 투구 이닝도 늘어날 가능성이 생겼다. 최원호 감독은 "지금까지 계획대로 운영하면 올해 산술적으로 120이닝 정도 소화할 것이라고 나오더라"며 "구단에서는 (올 시즌 문동주의 투구를) 140이닝에 플러스마이너스 10이닝 정도(130~150이닝)로 계획 중이다. 성인 기준으로 연간 투구 수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아직 없다. 지속적으로 검사하고 의사의 소견을 듣겠다"고 했다.
최원호 감독의 말처럼 적절한 관찰과 관리가 이뤄진다면 투구 이닝을 늘리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한화가 문동주에게 최대 30이닝을 더 맡겼을 때 얻을 것이 크지 않아 보인다. 오는 9월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출전까지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문동주는 지난해 부상을 여러 차례 겪은 투수다.
감독 교체를 바라보는 한화 팬들의 마음은 여전히 '불만'에 가깝다. 팬들이 모금해 홈구장 앞에서 트럭 시위까지 등장했다. '이기는 야구'가 최원호 감독 체제의 목표라고 했다. 그 수단이 '수베로 지우기'일 수도 있다. 한화는 성적으로 증명해 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