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가 개막한 지 어느새 7주가 흘렀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MLB에선 많은 규정 변화가 있었다. 피치 클록 강화가 경기 시간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경기당 30분가량 줄어들면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또 다른 관심 규정은 베이스 크기 확대(15인치→18인치 정사각형)와 견제구 제한이었다. 희미해져 가던 도루의 가치가 다시 올라갈 수 있을지 흥미로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루가 늘고 있다.
23일(한국시간) 기준 MLB의 경기당 도루는 0.70개로 1999년 이후 가장 수치가 높다. 지난 8년의 추세를 살펴보면 변화가 더욱 유의미하다. 이 기간 경기당 도루가 0.46~0.52개 정도였으니 상승세가 뚜렷하다. 도루 관련 규정 변화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선수와 팀들이 있기 마련이다.
빅리그 승률 1위(0.714)를 질주 중인 탬파베이 레이스는 도루 친화적인 규정 변화가 반갑다. 데뷔 첫 153경기에서 도루가 10개에 그쳤던 완더 프랑코가 올 시즌 4경기에서 14개를 성공했다. 팀 내 도루가 4개 이상인 선수가 7명. 팀 도루도 지난해 공동 11위에서 올해 공동 1위(53개)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뛰는 야구'가 팀 성적 향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도 '달리는 야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 2년 연속 100패 이상을 당했던 피츠버그의 올 시즌 공격 수치도 좋은 편이 아니다. 팀 득점 17위, 팀 OPS(출루율+장타율)도 15위에 그친다. 그런데 팀 도루가 탬파베이와 공동 1위다. 브라이언 레이놀즈는 6번의 도루 시도에 모두 성공했고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도루가 2개에 불과했던 카를로스 산타나도 5번 시도, 100% 성공률을 자랑한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바로 배지환이다.
배지환은 19번 도루를 시도해 14개나 성공했다. 뛰는 타이밍이 적절치 않을 때도 있고, 의욕이 앞서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MLB가 '도루의 예술'을 다시 경기에 부활시켜 득점 루트를 다양화하는 시도와 배지환의 재능이 시기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배지환은 경기에 따라 번뜩이는 타격 재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꾸준하게 상대 팀을 불편하게 하는 건 폭발적인 스피드이다.
현재 MLB 최악의 승률(0.204) 팀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이다. 성적이 바닥을 찍지만,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선수가 있다. 바로 거포 가능성을 발휘 중인 브렌트 루커와 함께 리그 도루 1위를 질주 중인 에스테우리 루이스다. 장타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루이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뛰어난 도루 능력 때문이다. 이미 24개의 도루를 성공, 오클랜드 리드오프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도루만으로 우승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달리기의 마술'이 올 시즌을 기점으로 살아난 느낌이다. 1987년 내셔널리그(NL) 챔피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시즌 홈런은 94개. 그해 리그에서 유일하게 100홈런을 넘지 못했다. 팀 타율도 0.263으로 평범한 수준. 그런데 팀 도루가 무려 248개로 2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50개나 차이 났다. 비록 월드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패했지만, 달리는 야구의 정점을 보여줬던 팀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아직 신인 자격을 갖춘 배지환으로선 데뷔 타이밍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자신의 최대 강점인 스피드로 빛을 발하며 방망이 재능도 성장시켜 리빌딩 중인 피츠버그에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