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나영이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2019) 이후 4년만에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이하 ‘박하경’)로 돌아왔다. 지난 23일 ‘박하경’ 공개 전 진행된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서 이나영은 ‘박하경’ 속 박하경을 연기한 소감을 전했다. 이나영은 울음을 참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덜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그 과정에서 눈물이 나더라”며 “시청자들에게 박하경에 이입해 뭔가에 빠져 있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나영의 바람처럼 드라마는 무작정 걷고, 먹고, 멍 때리는 박하경의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을 넘어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박하경’은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박하경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순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일상을 뒤로하고 일주일 중 하루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시작된 첫 하루살이 여행지는 전남 해남의 어느 절이다. 박하경은 단순하게 멍을 때리기도 하고 처음 만난 동년배 남성과 스님이 주는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다가 갑작스럽게 요가 전문가에게 자세를 교정 받기도 한다. 신상을 꼬치꼬치 캐묻는 오지랖 넓은 사람도 있다. 드라마에선 박하경이 여행을 하면서 생소한 환경에 내던져지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연이어 펼쳐진다. ‘박하경’ 배우 이나영. 사진제공=웨이브
누구나 낯선 여행지에서 가끔 예기치 못한 경험을 하는 것처럼 박하경은 뜻하지 않은 순간, 뜻밖의 사람을 만나, 뜻밖의 아름다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옛 제자를 만나러 군산에 갔다가 제자의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고, 영화제를 보기 위해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가 반복된 우연을 운명이라 느끼게 해줄 만한 남성을 만나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박하경’은 해남, 군산, 부산, 속초, 제주, 경주, 대전 등 회차마다 각양각색의 여행지 분위기를 녹여내고 그 위에 박하경과, 박하경이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담아낸다. ‘박하경’ 배우 이나영. 사진제공=웨이브
이러한 작품의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단연 이나영의 연기다. 이나영은 “‘멍 때리는 연기를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촬영 직전 ‘아 어떡하지’ 싶더라. 어떻게 연기하고, 어떻게 작품을 이끌고 가야 할지 불안감이 들었다”고 고백했으나, 이는 기우였다. 전작 ‘네 멋대로 해라’(2002), ‘아일랜드’(2004), ‘로맨스는 별책부록’ 등에서 보여준 특유의 편하고 자연스러움이 가득한 연기는 ‘박하영’에서 극대화된다. 편한 분위기 속 하얀 도화지 같은 표정 연기는 드라마틱하지 않은 서사와 빈틈없이 맞물린다. 오히려 여백이 있는 듯한 연기는, 역설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복잡 미묘한 감정을 끌어올린 만한 요소로 작용한다.
‘박하경’ 배우 이나영. 사진제공=웨이브
무엇보다 이나영만의 크고 맑은 눈빛은 작품의 의도와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높인다. 으레 극중 인물의 시점에 따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시선’, 즉 ‘평가’가 담기기 마련이지만 박하경의 시점은 관조에 가깝다. 단지 하룻동안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가졌던 기쁨, 아쉬움, 안타까움 등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천천히 흘려 보낸다. 하룻동안의 추억을 있는 그대로 남길 뿐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이나영이 그려내는 연기들은 “박하경은 이나영이다”라며 극찬한 이종필 감독의 평가를 떠올릴 수 있는 대목이다.
‘박하경’은 8부작으로 회당 25분간의 미드폼으로 제작됐다. 1~4회는 웨이브에서 24일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