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메이저리그(MLB)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2022년 내셔널리그의 전통이었던 투수 타석이 사라졌고 연장 승부에서는 승부치기가 도입됐다. 2023년에는 피치 클락이 도입됐고, 베이스가 커졌다. 수비 시프트도 금지됐다. 모두 야구의 역동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시간 소모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무국은 여전히 '역동성'과 '시간 단축'을 목말라하는 모양이다. 2019년부터 MLB와 협약을 맺고 '실험실'이 된 독립 리그 '애틀랜틱 리그'를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애틀랜틱 리그는 올해부터 세 가지 규정을 추가하기로 했다. 모두 사무국의 요청을 받아 이루어졌고 이번이 최초도 아니다. 올해 도입된 피치 클락 역시 적용 전 애틀랜틱 리그에서 최초로 행해졌다.
신 규정 첫 번째는 지명 대주자다. 경기에서 뛸 선발 라인업을 제외한 교체 멤버 중 한 명을 대주자로 사용할 수 있다. 주자가 출루하면 언제든 교체돼 투입 가능하고 공격 이닝이 끝나면 교체됐던 원 타자가 다시 수비에 들어설 수 있다.
두 번째 규정은 견제 추가 제한이다. 현재 MLB는 신규정에 따라 투구판에서 발을 떼거나 주자 견제 모션을 최대 2회까지 할 수 있게 규정한다. 그런데 애틀랜틱 리그는 이를 단 한 번으로 줄였다. 투구판에서 2회째 발을 떼거나 두 번째 견제 시도로 주자를 잡아내지 못하면 이는 보크로 처리된다.
가장 주목할 건 세 번째 신규정인 '더블 훅(Double-Hook)'이다. 만약 선발 투수가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하면 그 팀은 지명타자가 사라진다. 이후 타석에는 구원 등판한 투수들이 등판해야 한다.
더블 훅 규정은 선발 야구를 강제하는 규정이다. 더블 훅 규정 아래 모든 구단은 그날 선발 투수의 실점이나 투구 수와 상관없이 무조건 5이닝 이상 기용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지명 타자 대신 투수가 들어서니 타선에 구멍이 생긴다. 이 경우 팀 승리 확률도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선발 투수를 길게 써야 한다.
현대 MLB에서 5이닝은 쉬운 기준이 아니다. 지난해 MLB에서 이뤄진 선발 등판은 총 4860회였는데, 5이닝 이상을 소화한 경우는 총 3389회(69.7%)가 있었다. 10년 전 4024회에 비해 16%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MLB 사무국은 이 추세를 바꾸고 싶었을 거다. 신 규정으로 선발 투수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투수 교체 횟수를 줄여 경기 시간을 더 줄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선발 야구 강제가 야구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오히려 어설픈 규제로 경기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8년 탬파베이 레이스는 부상으로 인해 선발 투수가 부족해지자 필승조 수준의 구원 투수를 1회에 올렸다. 그리고 2회부터는 긴 이닝을 던질 수 있는 '롱 릴리프' 투수를 등판시켰다. 기존의 선발 투수(starter) 전략을 탈피한 '오프너(opener)' 전략이다. 그해 정규시즌 162경기 중 45경기(27.8%)에서 선발 투수 대신 오프너가 마운드에 올랐다. 탬파베이는 다음 해에도 전년도와 비슷한 43경기에 전문 구원 투수를 오프너로 올렸다. 탬파베이의 '혁신'은 첫해 90승, 이듬해 96승의 호성적으로 이어졌다.
탬파베이는 매년 팀 연봉으로 7000만 달러 이상을 쓸 수 없는 스몰 마켓 구단이다. 선수가 없으면 영입하면 되는 다른 구단들과 사정이 달랐고, 이를 혁신으로 해결했다. 탬파베이의 오프너 성공 이후 선발 야구의 비중도 줄었다. 이제 MLB 구단들은 주기적으로 조금씩 형태를 바꿔 전문 선발 투수 없이 경기를 막는 '불펜 데이'를 진행한다. 더블 훅 규정이 생겨나면 이 모든 변화와 혁신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단순 수치로 봐도 5이닝 강제는 파급력이 크다. 이닝 별 성적을 살펴보면 투수들은 평균적으로 1·3이닝과 2·4이닝째에서 성적이 다르다. 상위 타순을 홀수 이닝에 만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어 5이닝째에선 허용 실점과 피안타율이 급상승한다.
5이닝이 어려운 건 그 상위 타순을 3번째로 만날 확률도 커져서다. 그래서 5회 들어서면 투수는 실점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마의 5회'라고도 부를 만 하고, 5회 실점 여부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더블 훅 규정이 적용되면 팀은 추가 실점을 감수하고 선발 투수를 5회까지 끌고 가야 한다. 팀 공격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지만, 자칫하면 선발 투수가 난타를 당해 팀 승리를 내줄 수 있다. 나아가 난타전 양상의 경기를 늘려 리그의 질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
MLB 사무국 모건 스워드 운영 부문 수석 부사장은 “최근 몇 년간 애틀랜틱 리그에서의 실험으로 경기의 빠른 속도와 더 역동적인 플레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이런 일련의 실험들이 MLB에 더 많은 팬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순기능을 확인시켜줬다. 이번에 행해질 또 다른 실험들이 팬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음을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사무국의 이런 시도들은 점점 더 빨라지는 우리 시대의 흐름에 맞춰본다면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 변화가 야구의 본질을 해친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애틀랜틱 리그에서의 실험이 야구의 본질에 맞게 다듬어져 MLB로 올라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