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 배런. 사진=게티이미지 더그 배런(Doug Barron)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누구냐고? 지난주 칼럼을 빼먹은 독자라면 꼭 보고 오기 바란다. 이야기 속 주인공 더그 배런은 2019년 8월 ‘PGA 챔피언스 딕스 스포팅 구즈 오픈’ 2라운를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번개가 쳐서 경기위원회가 경기를 중단했다.
1라운드를 선두로 마친 더그 배런은 2라운드 중반에 들어서자 갑자기 샷이 흔들렸다. 틀림 없이 중압감 탓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자연이 더그 배런을 도운 것일까? 낙뢰가 폭우까지 몰고 왔다. 코스가 물에 잠겨 떠내려갈 정도였다. 결국 그날은 중단한 경기를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더그 배런은 사흘째에 2라운드 잔여 경기를 마치고 나서 최종 라운드까지 치러야 했다. 보통이라면 하루에 한 라운드 반을 치르느라 체력이 달려서 불리할 터이다. 그런데 샷이 흔들렸던 더그 배런에게는 행운이었다. 참고로 미국 시니어 투어는 보통 3라운드로 대회를 치른다.
사흘째 속행한 2라운드 잔여 경기에서 더그 배런은 오히려 타수를 줄였다. 전날 날씨 탓에 경기를 중단하기 전에 흔들리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는 2라운드를 단독 선두로 마쳤다. 한숨 돌리자마자 바로 이어진 마지막 3라운드에 챔피언조로 더그 배런과 함께 경기한 선수는 스콧 매캐런과 스콧 파렐이었다. 매캐런과 파렐은 그 시즌 PGA 투어 챔피언스 상금 랭킹 각각 1위와 4위인 강자였다.
무명인 더그 배런은 유명한 두 선수 틈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그가 친 드라이버 티 샷은 번번이 페어웨이를 갈랐다. 한 타 한 타 줄이더니 12홀에서는 마침내 프레드 커플스와 공동 선두가 됐다. 그 직후 맞은 버디 퍼팅 찬스가 연거푸 두 차례나 살짝 빗나갔다. '저러다 스코어를 잃는 것 아닐까' 하고 뱁새 김 프로는 걱정을 했다. 뱁새는 어느 틈에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맞은 15홀. 그는 상당히 먼 거리 버디 퍼팅을 홀에 떨구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태 보여준 차분하기만 한 모습과는 달랐다. 그렇게 그는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16홀 짧은 파4를 아쉽게 파로 마친 그는 승부처인 17홀에 들어섰다. 200야드 남짓한 긴 파3. 그린 주변에 트러블 지역이 여러 곳 있어서 조금만 실수를 하면 파 세이브를 하기가 너무 어려운 홀이었다.
부담스러운 긴 파3에서 더그 배런의 아이언 샷은 아주 매끄러웠다. 공은 낮고 멀리 날아 한 번 튀어 조금 구르더니 홀 네댓 발짝에 멈췄다. 이어진 퍼팅 스트로크가 아주 간결했다고 느끼는 순간 공은 홀로 떨어졌다. 버디였다. 2위 커플스와 두 타 차 선두가 됐다. 마지막 홀 티샷은 살짝 불안했다. 하지만 깊지 않은 러프에 떨어졌다. 같은 시간 커플스가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철수하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승부가 난 것이다. 마지막 홀을 파로 마친 배런은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프로 골퍼로 데뷔한 지 무려 28년째에 거둔 첫 승이었다.
더그 배런. 사진=게티이미지 더그 배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다가 뱁새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가 풀 시드도 없이 시니어 투어에 데뷔한 지 단 두 번째 대회 만에 첫 우승을 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50세 25일'로 PGA 투어 챔피언스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기 때문도 아니었다. 175cm에 77kg으로 다른 시니어 투어 멤버보다 전혀 나을 것 없는 신체 조건을 딛고 우승을 해낸 것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더그 배런이 첫 우승을 하기까지 무려 28년이라는 세월 동안 버텨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무명(無名).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어떻게 혹독한 외로움과 가난을 견뎌냈을까? 그가 첫 우승 전까지 평생 투어에서 벌어들인 상금은 보잘것없었다. 투어 비용을 감당하고 나면 생계를 꾸리기에도 빠듯할 정도였다. 그런 더그 배런이지만 우승을 확정하고도 또 우승컵을 받아 쥐고도 울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인 지난 2020년 다시 한 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PGA 챔피언스 쇼 채러티 클래식에서다. 첫 우승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가 꼭 다시 한 번 우승을 하기를 바랐던 뱁새는 너무 기뻤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심한 독자라면 더그 배런을 보고 용기를 내기 바란다. 뱁새가 그에게서 힘을 얻은 것처럼.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